어떤 사람이 TV에 나와 이야기를 하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일을 하지 않으면 사는 것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퇴직을 하고 하는 일없이 하루 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지루하고 살아가는 긴장감이 없을 것이라고들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쩐 일인지 꼭 무슨 일을 해야한다거나 긴장감 같은 그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 퇴직을 하고 직장을 나올 때도 그랬지만 지금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가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언제든지 내 시간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짓-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일이 아니니 짓이라고 격하해야할 것이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예를 들면 내가 운전을 해서 어저께는 아들과 또 어제는 며느리와 함께 병원에 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딸이나 손녀가 오면 그들을 도울 수 있는 무슨 짓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출근을 하였다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인데 자식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가. 운전해 주는 것, 집을 지켜 주는 것, 사소한 것이지만 이것도 일인 것이다.
요즘은 가을 날씨가 제법 싸늘하다.
가만히 있으면 한기를 느낀다.
차를 타고 집사람과 잠시 외출을 하였다. 그런데 바람이 막힌 곳에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공공근로」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저 하는 일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하루에 얼마의 일당이 주어지는 것이다. 집에 있으면 주지 않으니 출근이라고 그렇게 길거리에 모여 있는 것이다.
문득 나의 과거가 생각났다. 나는 학교에 출근을 하여 학생들을 가르치고 함께 행사를 하는 것 외에 쓸데없이 기다리는 것은 정말 싫었다. 특히 일요일에 일직을 한다며 출근을 하는 것은 내 삶을 파는 것 같았다. [파우스트]가 영혼을 판 것처럼 느껴졌다.
나중에는 일, 숙직이 없어졌지만 선생이 할 짓은 아니었다. 한 달에 한번 정도 돌아오는 일 숙직 요즘 말로 스트레스가 대단했다. 어느 날 숙직이라도 하고 나면 학생들 등교하는 데 부스스한 얼굴로 느즈레한 추리닝 걸치고 교무실로 가 고양이세수를 하고 축 늘어진 몸으로 교실에 들어가면 하루해가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퇴직을 일 이년 앞두고는 수업이 끝나고 퇴근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었다. 어쩔 수없이 학생들을 따라서 나도 집으로 오고 말았다. 수업이 끝나고 할 일도 없는데 그저 이런저런 잡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이 마치 내 인생을 담보로 먹고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선생님은 윗분의 눈치를 보면서 끝까지 시간을 지켰지만 나는 무슨 핑계를 대든지 빠져나오고 말았다. 심지어 내 옆 선생님들에게 ‘적에게 나의 퇴근을 알리지 마라.’고 웃으며 가방을 챙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북 했으면 젊은 후배선생님이 미리 이야기할 정도였을까?
나는 그런 저런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고 밥을 위하여 억지로 무슨 일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좋다.
지금처럼 이렇게 새벽 네시에 일어나 글을 쓰거나 산책을 해도 내일의 부담이 없어서 좋은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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