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나는 이럴 때 약이 오른다 』

일흔너머 2009. 11. 25. 11:25

 

 

잘 살거라 믿으며 물도 주고 햇빛도 좋은 곳에 정성껏 심은 나무가 나도 모르는 공해로 죽어갈 때 약이 오른다.


한창 바빠서 서둘러 신호를 보고 좌회전을 하려고 달려가는데 앞에서 어정거리다가 직진신호가 터지자 됐다는 듯 달려가 버리고 다음 좌회전 신호를 기다릴 때 나는 약이 오른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어도 평소 얍삽하게 굴다가 승진을 하고는 뭇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세상에서 제일 점잖은 척하는 친구를 보면 약이 오른다.


평소 원하던 물건을 사서 좋아서 아낀다고 장롱에 두었다가 막상 꺼내 쓰려고 하면 지퍼가 부러지고 천이 구겨져 알고 보니 어느 후진국의 싸구려인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약이 오른다.


온 동네가 성인회관의 선전벽보로 도배가 되어있어도 위치와 전화번호까지  알면서 관할 구청이나 경찰이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영세민 희망 근로자들이 물을 뿌리고 벗겨내는 꼴을 길을 지나다가 우연히 볼 때 나는 약이 오른다.


환자가 정말 원하지도 않은 의사가 진료를 하면서도 특진료라며 생돈을 받아먹는 병원에 갈 때마다 나는 약이 오른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그렇게 많은 불법 잡상인이 있어도 도로공사에서 단속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용을 하면 고객들이 손해라며 써 붙여 놓은 광고판을 보면 나도 모르게 약이 오른다.


국민을 위한다고 믿어달라던 정치꾼이 공금을 유용하고 나랏돈을 자신의 쌈지 돈처럼 써 검찰에 잡혔을 때 속이 시원하기보다는 국민들이 다 아는 이야기를 이제 하는가 하며 나도 모르게 약이 오른다.


세상에 오직 성(性)만 존재하는 것처럼 인터넷에 그렇게 많은 음란물들이 설치지만 정보통신의 선진국이라는 나라가 불법음란물 하나 처치하지 못하는 걸 보면 정말 약이 오른다.


전화 사기범이 그렇게 설쳐도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그저 수수방관하는 것을 보면 정말 약이 오른다.

누가 나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는지 수도 없이 날아드는 문자메시지, 정말이지 약이 오른다.

 
공부는 하지 않고 학교선생님 말을 시답잖게 여기며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던 녀석이 방과후 학원에서 혹은 과외로 시험 때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을 보면 칭찬을 해 주면서도 속으로 약이 오른다.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신(神)을 팔고 종교를 파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들이 끝까지 자신이 신의 메신저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 약이 오른다.


큰 지혜도 없는 사람이 아파트 청약을 하고 혼자 아는 듯 우리나라는 땅이 좁아 사두면 무조건 남는다고 거품을 물고 부동산 투기를 이야기할 때 나는 약이 오른다.


그리고 강남의 어디가 얼마 올랐다느니 하면서 TV에서 온통 서울이야기를 할 때 또 그 여파로 부동산을 사고 팔 때 어떻게 해야된다며 제약을 만드는 것을 보고 나는 약이 오른다.
정작 꾸지람을 들어야할 녀석은 없는 교실에서 결석이 잦다고 나무라는 선생님의 잔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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