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월에는 정말 많은 잔치가 있었다.
이제 한창 자식들을 출가시켜야 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자식들 덕택에 일찌감치 필혼(畢婚)을 한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청첩을 받는다. 그리고 부조금을 받은 경우는 빠지지 않고 찾아가 갚아야 한다.
그런데 며느리를 보려고 날을 받은 친구가 청첩장에 쓸 초대 글을 부탁했다. 얼른 생각나는 것이 내가 해본 경험이었다. 그래서 '인쇄소에 가면 견본이 많다.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걸 고르고 양식도 골라 하면 된다'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 그 친구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대부분의 글들이 청첩을 하는 이가 아이들 중심으로 되어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의 입장에서 청첩을 하는 글을 써 달라고 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 청첩을 받으면 언제 그 글을 다 읽기나 하나, 그저 언제 어디서 하는가를 확인하고 던져버릴 것인데.'하며 보통 하는 내 경우를 설명했다.
나는 그렇다. 우선 청첩장을 받으면 청첩인이 누구인가, 며느리를 보는가 아니면 사위를 맞는가, 그리고 언제 어디서 하는가를 확인하곤 달력에 잊어버리지 않도록 굵은 펜으로 적어두면 그만이지 구태여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일일이 초대 글은 읽지 않는다.
하지만 친구는 그렇지 않다고 형식을 갖추려 했다. 속으로는 나무라면서도 친한 친구라 어쩌지 못하고 머릴 싸매고 끙끙거린 적이 있다. 그 때문에 요즘은 청첩장이 오면 친구 생각이 나서 억지로 청첩의 글을 읽어본다.
「평소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 드리며 댁내 평안하시길 기원합니다.」
이렇게 우선 머리에 인사를 적고,
「아뢰올 말씀은 정성을 다해 키워온 저의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려 합니다. 부디 오셔서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아들의 결혼에 초대하는 말을 쓰면 부모가 청첩을 하는 경우다.
요즘 청첩장을 보면 대부분 그렇지가 않다. 결혼하는 신혼부부의 입장에서 청첩하는 경우가 다다. 전형적인 예를 들면,
「저희 두 사람 사랑 안에서 하나로 시작합니다. 이제 여러 어른과 친지 여러분들을 모시고 서약을 맺고자 하오니, 격려와 축복으로 자리를 빛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맑고 깨끗한 두 사람의 사랑을 모아 삶의 보금자리를 짓습니다. 그동안 보살펴 주신 부모님, 친지분들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저희의 뜻깊은 백년의 예에 부디 가까이 하셔서 축복해 주십시오. 언제나 오늘의 이 기쁨을 간직하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바로 이런 글이다.
말도 아름답고 뜻도 깊다.
다만 부모의 친지들을 청첩하는 마당에 자식이 나선다는 것이 어딘가 건방지게 느껴지고 격식에 어긋나는 것 같다.
차분하게 청첩의 글까지 읽어보는 친구의 깔끔한 성격에 또 하나 배우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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