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하루 8시간 근무 엄수 』

일흔너머 2011. 3. 30. 06:55

 

 

 

둘째의 시댁은 경북 북부의 오지다.
시부모님은 농사밖에 모르는 농부다. 거기다가 한우를 백 오십여 마리나 기르는 축산 농가다. 손녀 때문에 자주 만나 함께 식사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눈다. 특히 사람 손이 많이 가는 고추농사를 엄청나게 하기 때문에 해마다 얼마나 수확했는가 또 시세는 어떤가 등을 물으며 일이 고되지는 않은가를 걱정하기도 한다.


몇 해전에 어버이날을 맞아 딴 선물 하지말고 어차피 쓰는 돈이니 건강검진을 해 드리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했더니 좋다고 하여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사부인은 별 이상이 없었는데 사돈이 대장에 제법 큰 용종 같은 것이 발견되었다. 당장 입원을 하고 수술을 하자며 모두가 권했다. 의사선생님도 오래 두어서 될 일이 아니니 입원 날짜를 정하자고 했다. 하지만 사돈은 생각이 달랐다.

 

지금 한창 바쁜 농사철이니 가을걷이를 하고 보자는 것이었다. 봄에 발견한 걸 가을걷이를 하고 보자는 것은 누가 보아도 미련스런 일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손을 기다리는 소 백 오십여 마리가 있고 수천 평 땅에 고추가 기다리는 걸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강가를 산책하다가 너른 공터에 세워둔 트럭들을 간혹 마주하게 된다. 그 트럭의 옆에는 멀리서도 보이도록 제법 크게 쓰인 글씨가 있다. 「하루 8시간 노동 엄수」란 것이다. 운송을 업으로 하는 운전사들에게 운송업주가 오래 동안 일을 시키는 것을 반대하는 노동조합의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다.


이 캐치프레이즈를 보고 대뜸 사돈 얼굴이 떠올랐다.
"껌껌할 때 밭에 나가면 코앞에 주먹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추를 따다가 집에 들어옵니다."
시골의 농사일이 얼마나 고된지 극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운수노조의 슬로건처럼 자신의 밭일을 하면서 정해놓은 하루 8시간이 지났다고 호미를 던질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그래서 농부는 「천하지 대본」이라 하는 것이다.

'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아직 멀었다 』  (0) 2011.08.09
『 일본 대지진 유감 』  (0) 2011.04.04
『 당신은 자격이 있습니다 』  (0) 2011.03.08
『 나를 따르라!(Follow me!) 』  (0) 2010.12.06
『 삶은 쇼가 아니다 』  (0) 2010.1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