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가 약간 있었지만 너무 따뜻한 봄볕이었습니다.
“여보, 우리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데로 들어가 부둥켜안고 한바탕 울고 가면 어떻겠소?”
“까닭 없이 울긴? 난 안 울래요.”
온 산이 꽃으로 둘러싸인 길을 달리는 중이었습니다. 봄날은 차창 밖에서 너무 쉬 흘러가고 ‘내 인생에 또 하나의 봄이 이렇게 흘러 가버리는구나’하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농 삼아 해본 소린데 앞만 보고 생각에 잠겨있던 아내는 대번에 고개를 내둘렀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맘을 아내가 전혀 모른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산골짜기 후미진 비탈에 혼자 애처롭게 피어있는 진달래꽃을 보고 맘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더욱이 빛나는 영광도 명예도 바라지 않는 양 작달막한 키에 그저 가냘픈 꽃잎 두어 장 나풀거리면서 실연의 몸살을 앓듯 혼자 사나흘 붉게 애끓이는 진달래의 그 사연에 누가 가슴아파하지 않겠습니까? 아내는 알면서도 엉뚱하게 딴청을 부리는 것입니다.
“까닭이 없긴? 이렇게 봄날이 다 지나가는데……?”
먼 데를 바라보며 눈에 들어간 먼지를 닦아내기라도 하는 양 눈꺼풀을 문지르다 민망하여 뱉는 말에,
“그럼 여름이 또 뒤 따라 오잖아요? 가을도 올 게고, 겨울은 또 어쩌고……, 오는 여름 맞이하고 가을은 또 가을대로 그렇게 좋아하면 되지 울긴 왜 울어요?”
하면서 작은 동요도 없이 쉽게 말하는 아내는 그저 대책 없이 딴청을 부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나가는 계절을 억지로 부여잡고 슬퍼하지 말고 오는 계절을 맞으며 즐겁게 살자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입니까. ‘이렇게 또 안타까운 한 계절이 무심히 지나가는구나!’하고 생각하면 가슴 한 구석이 미어지는 것을 어찌합니까. 그래서 가는 봄이 아쉽다 못해 스쳐 가는 계절의 언저리를 부여잡고 목 놓아 울고 싶은 것입니다.
하기야 꽃이 진 후에 열매가 맺히고 또 계절이 흘러 활기찬 여름이 되어야 뜨거운 뙤약볕에 과실이 영글어 간다는 것쯤은 압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가을의 그 단풍과 결실, 뿐만 아니라 백설이 덮인 산천의 하얀 아름다움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다만 지금 이 봄 한 철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아쉬운 것이고 그게 내가 울고 싶은 이유입니다.
때문에 촉촉이 비가 내리는 어느 날,
한 잔의 술을 핑계로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정말로 목 놓아 울지 모릅니다.
취중에 곡조도 어울리지 않는 노래를 주절대며 말입니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흩날리더라. 오늘도……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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