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미완성, 그 아름다움 』

일흔너머 2008. 4. 7. 07:57

 

슈베르트의 미완성교향곡(symphony No8, Unfinished)은 미완성인 원인에 대해 갖가지 추측이나 상상이 덧붙여져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이 곡이 미완성으로 끝난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이미 두 악장이 너무 잘 짜여져 있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까닭에 여기에 다른 어떤 피날레를 덧붙일 경우 오히려 쓸데없는 겉치레가 된다는 것을 슈베르트의 천재적 직관이 알아차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마디로 교향곡의 형식상으로는 미완성이지만 내용은 이미 무르익어 완성되어 있었단 얘기다.

 

풍산면의 하회마을은 햇볕이 두꺼워 봄이 나른하다.
느릿한 강물이 휘돌아 흐르며 쌓인 모래밭에 늙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나지막한 집들은 옹기종기 모여 가까이 정답다. 언젠가 지나가다가 기념품 판매점에 들러 하회탈로 만든 넥타이를 샀다. 말이 넥타이지 탈의 두꺼운 부분에 꿰진 끈을 잡아당기면 목 부분이 줄어드는 그런 간단한 것이다. 그런데 가운데 있는 '이메 탈'이 멋을 풍겨서 보는 이마다 신기해하였다.

 

하회탈은 대개 그렇듯 거의 감다시피 한 눈으로 소리 없이 웃어대는 표정이 특징인데 '이메 탈'은 미완성으로 턱까지도 없다. 전설에 의하면 탈을 만드는 허도령을 사모한 처녀가 누구도 보여주면 안 된다는 금기사항을 어기고 작업장의 문구멍을 뚫고 들여다 본 결과 신의 노염을 싸서 허도령이 토혈(吐血)을 하고 죽는 바람에 '이메 탈'은 완성되지 못했단다.

 

이런 못다 이룬 사연에 정이 끌려서인지 하필 나는 이메 탈에 관심이 더 가고 좋아서 그 날 넥타이도 바로 이 미완성의 이메 탈을 샀다. 이메 탈은 대체로 일그러진 모양이면서도 순박함을 볼 수 있다. 탈의 코가 삐뚤어진 것은 병신임을 암시하며 눈 꼬리가 아래로 쳐진 것은 악의가 없다는 상이다. 놀이마당에서는 하인으로서 양반, 선비를 적극 풍자함으로써 이들을 더욱 바보스런 존재로 격하시키는 구실을 하는 인물이다. 웃는 표정을 짓고 있지만 언청이에다 턱까지 없어 꼴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 훌륭한 예술품이란 아이러니컬하게도 완벽하게 표현되거나 만들어지지 못하고 미완성인 것이 더러 있다. 이것은 탐스럽게 꽉 차고 풍요로운 것이 아름답다고들 하는 상식의 테두리를 한발 물러나 약간 모자라는 경우에도 사람들은 또 다른 감명을 받게 됨을 이른다. 동양화의 화폭에 남겨두는 여백처럼 완벽하게 칠하지 않고 비워두는 곳에서 오히려 안정을 찾고 여유를 느끼는 것이다. 위대한 감성의 소유자인 예술가들은 이것을 놓치지 않고 너무 큰 감동에 빠졌을 때 그저 입을 벌이고 미완성인 채 팽개쳐 둠으로서 그 예술을 대하는 사람 스스로 감동을 자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인간이 본디 완벽하지 못하다는 것을 역설하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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