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이 제법 두터운 마당가에서 박씨는 망설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까짓 베어버리면 시원하게 땅을 고르고 넉넉히 두어 대는 더 주차할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런데 막상 오늘 아침에 톱을 들고 달려드니까 그게 아니었다. 죽은 아내와 여름날 평상을 놓고 저녁을 먹던 기억부터 시작해서 감나무와 함께한 사연들이 줄줄이 떠오르는데 무슨 추억의 영화 필름 돌아가듯 했다. 거기다가 아직 잎이야 나지 않았지만 봄기운에 물이 오르고 있는 나무를 싹둑 벤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다. 나무를 올려다보고 내려다보고 한참 망설이는 박씨를 보더니 이건 영 아니다 싶었든지 옆집 장씨가 비키라는 듯 박씨를 밀치고 사다리를 가져다 놓았다.
그리고 제법 굵은 가지부터 무심히 베기 시작했다. 몇 가지를 치고 나니 몽당빗자루 같은 꼴의 감나무는 몰골이 흉측해져 버렸다. 그때야 박씨는 다가가서 감나무 밑동을 삽으로 파헤치고 다잡아 베기 시작했다. 장골 둘이 땀을 흘렸지만 거의 한나절이 돼서야 일은 마무리되고 마당은 시원하게 드러났다. 그러자 보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했다. '시원하다'하는 이도 있고 '허전하다'하는 이도 있었다. 박씨는 자신을 달래기라도 하듯,
"잘 됐구먼, 앞이 다 시 원 하다……."
라며 일부러 크게 내뱉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미련 같은 그 무엇이 무너져 내리는 데는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미 끝난 일 허전하면 어떻고 시원하면 어떤가. 여름 손님이 들끓을 때 차 두어 대만 더 대는 게 어딘데. 박씨는 손을 털며 가려고 하는 장씨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이제껏 감나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순득 엄마가 누워있는 야트막한 비탈을 내려다보며 막걸리를 권했다. 두 사람은 나무를 베느라 힘이 다 빠져서인지 아니면 무슨 못할 짓을 저지른 기분 때문인지 술을 마시고 또 잔을 권하면서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하기야 널찍한 시골 마당에 감나무 한 그루 있으면 얼마나 좋은데. 여름에 그늘 좋지. 사시사철 변화는 거 보기 좋지. 대충 잡아도 어른 주먹 같은 반시를 해마다 여남은 접씩 따면 그걸로 홍시에다 곶감에다……. 어찌 감나무 좋은 걸 말로 다 할까. 하지만 차츰 손님이 늘고 모두들 차를 몰고 오는 바람에 주차장이 모자랐다. 또 차들이 지나는데 거치적거리고 심지어 나무에 부딪히기도 했다. 마음이 여린 박씨는 어쩔 줄 몰라서 단죄하는 기분으로 그 가지를 잘라버리곤 했다. 나무는 기우뚱해지면서 차츰 비참하게 보였다. 생각다 못한 박씨는 오늘 아예 밑동을 댕컹 잘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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