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감나무 식당 』---(5)

일흔너머 2008. 4. 6. 22:58

 

동네에서는 언제부턴가 억새 밭에서 귀신이 난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프게 우는 여인네 청승맞은 울음소리도 들리고, 죽여라 고 고함치는 험한 남정네 목소리도 들린다고 했다. 본래 후미진데다가 소문이 흉흉해지자 해만 떨어지면 아람이네 밭쪽에는 아무도 다니지 않았다. 다만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박씨가 담배를 물고 어슬렁거릴 뿐이었다.

 

 산골의 겨울은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듯 길고 지루하지만 그해 겨울은 더욱 그랬다. 박씨의 사람 꼴은 말이 아니었다. 정신을 차리고 소문이 박씨 귀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늦었다. 전주댁은 박씨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다. 돈 받고 일하는 조리사 마냥 눈을 내리깔고 손님들의 주문대로 음식이나 만들었지 예전처럼 밝게 웃음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박씨에게 말을 건네는 경우는 아예 없었고 단지 한 집에서 살뿐 남보다 더 멀었다. 봄이 되자 낚시꾼들은 여전히 찾아왔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세상일이 다 그렇다는 듯, 꽃은 피고 잎은 새록새록 나왔다. 감나무 식당에도 마찬가지였다. 박씨와 전주댁에게는 해결 못할 너무나 큰 일이 버티고 있었지만 간판격인 감나무를 인연 끊듯 그렇게 베어버렸다는 것 외에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박씨와 전주댁 사이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한겨울의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일에 빠져 말없이 지난 시간이 달포나 되었을까 맑은 산골에 뻐꾸기 요란하게 울어대던 봄날 전주댁은 떠나갔다. 박씨는 전날 장씨가 가져다 놓은 손수레 그림자를 보고 착각을 했단다. 감나무 밑에서 전주댁이 늦게까지 파를 다듬고 있는 줄 알았단다. 이미 베어버린 감나무가 거기 있을 리 만무하건만 수십 년 눈에 익었던지라 손수레가 감나무 그림자로 보였던 것이다. 그만 들어가 쉬라는 말을 몇 번이고 하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단다. 망설이다 박씨 혼자 들어가 잤는데 아침에도 몰랐다고 했다. 평소 일찍 나와 식당 일을 서둘렀는데 오늘은 나오지 않아 어디 몸이 아픈 줄 알았다는 것이다. 점심때나 되어서 방을 들여다보고 떠나간 줄 알았다.

 

전주댁의 물건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고 박씨는 눈앞이 캄캄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마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한마디 변명도 못했다. 뜨거운 화로를 그대로 뒤집어 쓴 것 같았다. 한참동안 부끄러움에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감나무 식당이라고 꼭 감나무 있으란 법은 없지만 맛은 누가 내나, 순득 엄마 때도 그랬지만 이건……. 사람 떠난 자리가 이렇게도 크구먼…….'
퍼질고 앉아 넋 나간 사람처럼 주절댔다.
'…….내가 몹쓸 놈이지 그래 죽어야 해.'
감나무가 서 있던 자리에서 전주댁이 걸어갔을 비탈길을 내려다보며 순득 엄마를 떠올렸다.

이제 그 곁에 누우면 좋겠다는 생각과 죽음을 떠올렸다. 한숨처럼 담배를 내 뱉었다. 그 때 얄궂은 바람을 타고 순득 엄마의 목소리가 늘그막 이명(耳鳴)처럼 등뒤에서 쟁쟁하게 울렸다.
'그런 께 잘 하지 이 등신, 나무나 사람이나 있을 때……. 있을 때 말이다.'

-------------------------------------2004.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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