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전주댁의 음식 솜씨는 그 어떤 선전보다 대단했다. 칼국수도 그랬고 비빔밥도 그랬다. 여름 한철이 다 가기 전에 소문이 나고 자동차들이 대문에 줄을 이었다. 휴일에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손님들 때문에 허드렛일을 거드는 아줌마를 한 명 두고도 저녁 무렵 몸은 파김치가 되었다. 박씨는 늦게 재취로 얻은 전주댁이 탈이 날까 겁이 나서 식당이고 뭐고 다 치우고 그저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러나 한번 시작한 일, 아무 이유 없이 그만 둔다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대처에서 공부하는 순철이와 순득이 탓도 있지만 식당이 잘 되면서 박씨는 농사보다 식당 뒷일을 봐주는 것이 더 큰 일이었다. 몇 마지기밖에 안 되는 농사 아무리 열심히 지어봤자 들어간 농비 빼고 이래저래 남는 것도 없었다. 순득 엄마 살았을 때 어려운 형편은 말도 다 못한다. 순득 엄마가 사람이 좋아서 말없이 살았지 이런 시골구석에 뭔 영광이 있었겠는가. 몸이 그렇게 아팠지만 변변히 약 한번 써보지 못 하고 눈을 감았다.
그런데 생각도 않던 전주댁이 후처로 들어앉으며 박씨 형편은 하루아침에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었다. 막걸리 한 잔 마음놓고 마실 주제가 아니었지만 이젠 이웃이 어려우면 돈을 꿔주는 형편까지 되었다.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된단 말이 바로 이런 경운가. 벽해가 상전이 된 것이다.
손님은 자꾸 늘어갔다. 매일 한 오십 명 정도의 손님이면 적당한데 어떤 때는 거의 백 명에 가까운 손님들이 들이닥치니 모든 것이 모자랐다. 요즘은 낚시철도 지났건만 손님이 거의 칠팔 십 명은 족히 된다. 이러니 없던 냉장고도 사야하고 난로나 선풍기도 달아야 하고 결국 탤래비까지 놓았다. 그리고 고정으로 월급을 주고 사람도 들였다. 청춘에 혼자되어 놀고있는 동네 과부, 아람이였다. 얼굴은 반듯한 것이 남정네들에게 눈웃음 살살 쳐대는 통에 동네 부인들은 싫어했다. 하지만 매일 와서 일해줄 사람을 그렇게 쉽게 구하기도 어렵고 마침 놀고 있으니 불러다 일을 시킨 것이다.
열 여자 싫어할 남자 없다는 말처럼 남정네들은 오히려 좋아했다. 남자손님이 주로 찾는 '감나무식당'에서는 안성맞춤이었다. 어쩌다 고기가 잘 잡히지 않는 날 낚시꾼들이 감나무식당에 모이면 자연스럽게 술판이 벌어지고 그때 아람이 인기는 최고였다. 손님의 입장에서 보면 오랜만에 야외에서 얼큰하게 취한 김에 젊은 여인네와 시답잖은 농지거리를 한다는 것이 좋았다. 물론 아람이가 꼬리를 치며 흥을 돋우고 술잔을 돌리기라도 하면 어떤 때는 하루 종일 판 밥값에서 남은 이익보다 술값에서 남긴 이익이 더 많을 때도 있었다.
이런 때 아람이는 일당을 톡톡히 해서 좋고 또 고맙다는 뜻으로 이튿날 박씨가 돈 몇 푼을 더 찔러 주어서 좋았다. 물론 이런 일이 자주 있지는 않았다. 어쩌다 낚시대회를 한다고 몰려오면 '감나무식당'은 밥집이 아니라 거의 술집에 가까웠다. 이런 일로 우연찮게 박씨와 아람이는 눈이 맞아버렸다. 술이 문제였다. 전주댁은 밥 이외에는 술판이 어떻게 되든 안주 정도나 마련해 주지 더 이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술판이 어떻게 되든 일찌감치 안채로 들어가 피곤한 몸을 뉘어버리는 것이 습관이었다.
술판이 길어진 그날도 전주댁은 이미 들어가고 엉망으로 취해버린 아람이를 가게 옆방에 뉘어준다는 것이 탈이 난 것이다. 오십이 넘은 박씨가 분 냄새 폴폴 나는 삼십 중반을 안았으니 술이 아니라도 문제가 일어날 일이었다. 거기다가 아람이는 평소에도 말없이 무던한 박씨가 믿음직스럽고 좋았다. 결국 술김이었지만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이쯤 됐으면 서로가 조용히 하룻밤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소리소문 없이 넘어갔으면 문제는 달랐다. 그러나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이란 한번 불붙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되었다하면 끝장을 봐야하는 것이다. 특히 남편 없이 혼자 사는 아람이는 거치적거리고 무서울 게 없었다.
식당일 사이사이에 박씨를 흘겨보는 눈길과 지나가며 부딪히는 정도가 여사가 아니었다. 날이 갈수록 더 심했고 심지어 전주댁 앞에서 대놓고 박씨를 끌어안고 장난을 치는 것이었다. 물론 박씨는 전주댁 때문에 일만 없으면 자리를 피했지만 악을 써 뿌리칠 일도 아니었다. 그저 벙어리 냉가슴 앓듯 혼자서 그날의 잘못을 곱씹곤 했다. 이대로 가다간 뭔 일이 곧 터질 것 같았다. 아람이의 눈길은 날이 갈수록 더욱 이글거리며 타올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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