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서 제갈량이 마속(馬謖)의 무지로 인하여 가정(街亭)과 열류성(列柳城)을 위(魏)의 사마의에게 모두 빼앗기고 서성(西城)으로 나가 겨우 병마 2천 정도로 양초(糧草)를 운반하고 퇴각을 준비할 때 이야기다.
사마의는 15만 대군으로 서성을 향하여 사방에서 무인지경처럼 물밀듯 쳐들어 왔다.
이런 위급한 때 공명에게는 무장(武將)이란 한 명도 없고 모두가 싸움을 할 줄도 모르는 문관들뿐이었다.
이때 공명은 급히 영(令)을 내린다.
「성에 꽂힌 깃발은 모두 치워라. 그리고 사대문을 활짝 열어라. 문마다 군사를 평범한 백성의 복장으로 하여 길을 청소하라. 비록 위병이 가까이 온다 하더라도 태연히 길만 쓸고 놀라지 마라. 나에게 계책이 있으리라.」
공명은 명령을 내리고 나서 성상(城上)에 올라 향을 사르고 아무 일 없는 듯이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사마의가 도착하여 이것을 보고는 평소 제갈량의 계교가 오묘함을 잘 아는 지라 의심하고 곧 군사를 뒤로 물린다. 아들 사마소가 아버지에게 제갈량이 짐짓 군사가 없어 저런 해괴한 짓을 하는 것이라고 만류했지만 사마의는 듣지 않는다.
「제갈량은 평생 조심하는 사람이다. 절대로 위험한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성문을 크게 열고 태연히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은 우리군사를 유인하려는 수작이다. 나아가면 그의 계교에 빠지고 만다. 너희들이 어찌 제갈량의 오묘한 뜻을 알겠느냐?」
그리고는 곧 군사를 물려 멀리 후퇴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두가 제갈량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제갈량은 크게 웃으며 대답한다.
「사마의는 내가 평생을 조심하며 지낸지라 이렇게 목숨을 건 위험한 짓을 하지 않을 줄 아는 까닭에 꼭 복병이 있는 줄을 알고 물러간 것이니라. 내 어찌 이런 위험한 짓 하기를 좋아하겠는가? 부득이해서 이 계교를 쓴 것이다.」
이야기를 듣고 모두 탄복하였다.
나는 이 이야기를 읽고 제갈량의 계교에 감탄하기보다는 참다운 지도자의 모습에서 우선 감동을 받았다.
평소 얼마나 일관된 정책을 써 왔으면 적국(敵國)에서조차 예측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오히려 한번의 불규칙한 책략에 적이 속아넘어간단 말인가?
요즘 우리 주위의 지도자나 정책 입안자들이 깊이 새겨야 할 것 같다.
별 뾰족한 대책도 없이 거저 공부 안 해도 대학 갈 수 있다고 했다가 대안 없이 사라진 장관이 있다.
또 지난해 수능시험이 쉬웠으니 올해는 어렵게 출제했다고 변별력을 강조하던 때가 어젠데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이 난리를 치자 갑자기 사과하는 모 출제위원장도 있다. 이들은 모두 아무 소신과 철학도 없이 거저 정책을 바꾸어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데만 목적을 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평소 삼국지를 읽으며 감정에 쏠리어 느끼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는 세 나라의 국력을 비교하는 것이다.
삼국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었다고 하나 사실 촉(蜀)은 위(魏)에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력이나 물자가 부족하였다.
조조는 많은 싸움에서 자주 지더라도 중원(中原)에서 또 다른 군사를 동원할 수가 있었다. 심지어 '죽어 나는 것은 조조 군사'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많은 군사가 죽고 또 동원되고 한 것이다.
그러나 촉의 제갈량은 그렇지 못했다.
한번의 패배는 곧 국가의 존망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니 매사 조심하고 나아감과 들어옴에 빈틈없이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삼국시대의 촉과 지금의 우리 나라는 너무 흡사하다.
가뜩이나 작은 국토를 그것도 나누어서 살아가니 여러 가지 자원은 주위의 강대국과 비교할 수 없다.
이런 약점을 가지고 그들과 나란히 경쟁하려면 제갈량과 같이 평생을 거저 조심조심하고 살아온 지혜를 가진 그런 지도자가 필요하다.
민족의 장래를 가지고 자신의 한풀이나 하는 지도자들이 나와서 아무렇게나 투기(投機)하도록 맡겨 둘 수는 없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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