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은 실력이 있든 없든 학교에서만은 한 교실에서 뒹군다.
여기서 뒹군다는 것은 평소 성적 서열을 가지고 그 「 끗발 」을 부리거나 우열의 그 어떤 권력도 행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가 일반사회와 다른 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만약 성적순으로 학생들을 운동장에 열을 짓는다면 일등과 꼴찌는 거리가 멀어서 감히 얼굴을 볼 수도 없다.
우리나라 학생들을 대충 순서대로 세워도 학급의 한 등급 차이가 전국적으로는 몇 만(萬) 등의 차이가 되고 그들을 1m 간격으로 세운다면 수 십 Km의 거리가 되어 불러도 들리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눈을 홉뜨고 두리번거리며 찾아도 친했던 옆자리의 급우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개인차가 심한 학생들이 같은 학교 한 교실에서 동창생, 동급생이라며 친하게 그리고 아무 거리낌없이 친구가 되어 지내는 곳이 학교이고 이 아름다운 시간들이 학창시절이다. 거저 한 학년이라서 좋고 같은 반이라서 친한 아무 조건 없는 그런 곳이 학교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가 좋다.
우리가 살다보면 실수(失手)할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곳이 학교다. 그래서 엔간한 잘못을 저지른 학생도,
"선생님 잘못 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겠습니다.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하며 뉘우치는 말과 고개를 숙이면 대부분 용서가 되는 세상이 학교이다.
그래서 나는 학교가 좋다.
사실 사람 사는 세상인데 더럽고 치사한 녀석, 마음에 거슬리는 녀석이 없을 리는 없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조금만 참으면 된다. 한 해 아니 여름 겨울, 방학이 있으니 대충 그 절반 정도의 시간만 두 눈 질끈 감고 기다리면 학급편성을 다시 하고 다른 친구들과 만나게되는 것이다. 그리고 희망찬 새 학년이 시작되는 것이다.
새 학년은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서 좋다. 거기다가 보기 싫은 녀석과 헤어져 속이 시원하다. 하지만 정들었던 친구들과 헤어지는 아픔도 있다. 서로 길들여졌던 관계가 깨어지는 아쉬움도 함께 배우는 것이다. 세상은 좋은 일만 있으라는 법도 없고 나쁜 일만 있으라는 법도 없다는 우리 삶의 평범한 진리를 깨우치는 과정인 것이다.
어디나 마찬가지지만 시간이 흐르면 이런저런 변화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변화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그런 큰 변화가 아닌 어제가 오늘 같고 올해가 지난해 같은 큰 흐름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그래서 나는 학교가 좋다.
인생에 있어서 아름답고 즐거운 시간들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지루하게 여기던 학창시절도 마찬가지다. 졸업을 하고 시원한 듯 학교를 떠나지만 오래지 않아 도망치던 노루가 언덕에 올라 자신이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듯 우리는 사회라는 험지(險地)에서 아름다웠던 학창시절을 그리워하며 아쉬움에 종종 과거를 회상하게된다. 그리고 그 동경을 현실로 만들어 보려는 욕심에 동창회라는 모임을 갖는다.
서로 만나 한 잔의 술로나마 즐거웠던 추억의 골짜기를 헤매는 것이다. 그러나 발버둥치며 찾으려는 우리의 아름다웠던 과거는 이미 우리의 곁을 스쳐지나 가버린 한낱 이야기 속의 전설로만 남아있을 뿐,
그때는 이랬다는 둥, 그때 우리가 무엇을 했다는 둥, 말끝마다 그때라는 접두사가 붙어야 하는 추억인 것이다. 이튿날 숙취에 아픈 머리를 감싸고 잠시나마 가졌던 학창시절의 꿈속에서 차가운 현실로 돌아와 아름다웠던 그 날들을 다만 그리워하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국민학교부터 대학까지 십 육 년 그리고 삼십 년 넘는 교직생활까지, 내 삶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냈다. 지겹지도 않느냐는 물음에 거저 웃는다.
물론 학교 바깥 세상에 대한 호기심도 컸다. 하지만 오래잖아 내가 더 하고 싶어도 못할 그런 시간들이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남은 시간 더욱 애틋하게 보내야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이 복잡한 사회, 사람들이 가장 바라는 「돈」을 쳐다보지 않고 거저 초롱초롱한 학생들 눈망울만 바라보며 보낸 지나간 시간들을 생각하면 복 받은 삶을 살았다는 생각에 나는 정말 학교가 좋다.
이웃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는 한 친구가 귀여운 늦둥이를 얻었다.
어느 날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것을 돈이 없으니 다음에 사주겠다고 했단다. 그러자 그 귀여운 아들녀석,
"아빠는 돈 벌러 안가고 맨날 학교만 가니까 그렇지."
하더란다.
철없는 어린 아이 눈에도 학교는 돈과 멀고 선생님들이란 거저 하늘의 이슬이나 먹고사는 걸로 비친 모양이다.
이젠 퇴직을 하여 시원하다는 듯 툭툭 털고 집에서 빈둥대지만,
그래도 나는 학교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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