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손톱 밑에 때 』

일흔너머 2008. 5. 5. 10:38

 

몇 년 전 일이다.
선을 보러 갔다온 첫째가 '총각이 어떻더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지르며 하는 말이
"손톱 밑에 까만 때가 보이는 순간 싫어졌어요."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요즘, 우리 막내가 그렇다.

퇴근 때는 손이 기름에 절어 손톱 밑에는 유달리 까만 기름때가 끼어 있다.

보다 못해 '아가씨들이 얼마나 싫어하는 줄이나 알아? 칫솔로라도 좀 깨끗하게 씻고 퇴근하면 좋겠구만'하고 한마디하면,
"까짓, 뭐 그런걸 가지고 그래요. 싫어하면 싫어하라지요."
라며 그저 대범하게 넘어가 버린다.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손톱 밑에 낀 때가 얼마나 고귀한 것인가?
게을러서 씻지 않은 것이 아니라 세상 편하고 안전하게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뙤약볕 아래 땀을 흘리며 나사를 조이고 기름칠을 하는, 공짜 바라지 않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살아가는,

그래서 삶의 진한 향기가 스며든 아름다운 증거, 성실의 때가 아닌가?

 

바람이 서늘해지며 가을이 점점 깊어가고 계절의 끝자락을 붙잡고 명긴 매미가 힘없이 울고 있다.
나이 예순을 코앞에 두고 이제 나도 겨우 세상이 보인다.


초점이 풀려 힘없이 어두워 오는 눈에.                                                             <2007.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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