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도(道)란? 』

일흔너머 2008. 5. 26. 10:15

 

한 수자가 물었다.
"스님, 도(道)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스님은,
"응 그래, 아침밥은 먹었느냐?"
스님의 엉뚱한 대답을 듣고 엉겁결에 수자는,
"예? 먹었습니다."
그러자,
"그럼 차를 마시게."
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선문답이다.

 

동문서답하듯 엉뚱하여 그 뜻을 잘 알아듣기가 힘들면 '선문답 하듯 한다'고 한다.

그러나 도(道)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가까이 일상에서 찾아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리라.

밥 먹고 차 마시듯 말이다.

 

봉화에 있는 청량산엘 갔다. 한 무리의 청년들이 도복을 입고 목검을 등에 메고는 왁자지껄 떠들며 내려왔다. 소위 검도(劍道)를 하는 무리들인 모양이다. 모두가 유단자인지 도복이 검은 색이며 오래 운동을 하여 무척 닳아 있었다. 나도 운동을 좋아하여 철부지 중학교 시절부터 유도, 태권도, 합기도 등 안 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들을 본 순간 중학교 때 우리를 가르치시던 유도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이놈들아 유도란 도(道)야. 거저 기술만 뛰어난 녀석들이 날뛰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지. 그것은 유술(柔術)이야." 하시면서 정의(正義)를 따르고 약자를 보살피는 마음가짐을 가지라고 당부하는 것이었다. 그는 학교의 교장 교감 선생님보다 더 높아 보였고 영어 수학 선생님들보다 더 훌륭하게 보였으며 어린 가슴에 의기를 심어준 우리들의 영웅이었다.

 

그렇다고 그 선생님이 유도기술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또 형편없이 모자라는 것도 아니었다. 힘이나 기술은 거저 평범할 뿐이었다. 하기야 예순을 바라보시던 그 선생님의 연배에 무슨 힘이 있었으랴. 다만 그 선생님의 의연한 처신에서 우리는 감화를 받았던 것이다. 힘이 있다고 우쭐대지 않고 자기보다 힘센 사람 앞에서 비굴하지 않았으며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에 앞서는 그런 정신자세를 우리들에게 가르치신 것으로 안다.

 

그 선생님만 생각하면 지금도 떠오르는 것은 태권도나 검도 하는 녀석들 운동 깨나 했노라는 표시로 새끼로 묶은 단련판을 두드려 주먹에 굳은살 만들어 다니는 것과 도복을 무슨 자랑이라도 하듯 밖에 둘러메고 다니는 것을 미워하고 싫어했던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도복관리에서는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등교할 때도 항상 가방에 넣어 가야했고 도복을 입고 다른 엉뚱한 운동이나 외출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자신의 강함을 감추어 상대에게 편함을 주는 것이 도라는 선생님의 지론 때문이었다. 물론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야 그 가르침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일상생활의 도인 것이다.

 

요즘 방학을 맞아 조그만 철부지들이 태권도복을 입고 떼를 지어 온 동네를 뛰어다닌다.

태권도 사범이란 자가 염치없게도 그렇게 만들고 권하는 것이다.

바로 자기 도장을 선전하려는 얄팍한 상술(商術)이다. 이걸 어떻게 태권도(跆拳道)라 하겠는가?

 

산 속에서 만난 검도인들.

그들은 이미 검도가 무엇인지 검술이 무엇인지를 알만한 연배요 그 정도의 염치는 가질 만큼 긴 기간을 훈련한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도복을 입고 등산을 한다는 것은 도를 배운 것이 아니라 거저 검술(劍術)을 배운 한 낱 기술자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요즘 한창 쟁점이 되고 있는 무슨 검도가 우리 나라의 정통이니 하는 편가르기보다 검도에서도 우선 도(道)를 가르치고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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