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

『 개 값 』

일흔너머 2008. 6. 4. 10:55

 

첫째 부부가 시간을 내어 찾아온다니 얼마나 반가운지 오랜만에 만나자는 친구와 약속도 뒤로 미루고 일찍 집으로 왔다.

아내는 급하게 연락 받고 저녁을 부랴부랴 준비를 해 놓았다.

모두들 평소보다 이른 저녁밥을 먹고 개를 데리고 산보나 하자며 강가로 나갔다.

 

몇 달만에 밖으로 나온 진도개 '돌이'는 난리였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나와서 평소처럼 묶었던 끈을 풀어주고 마음대로 다니도록 해 주었다. 그때 저 멀리 어떤 아가씨가 조그만 개를 두 마리나 데리고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아내는 잡아매려고 돌이를 부르며 그 아가씨에게 '개를 안아라.'고 고함을 쳤다.

 

그러나 그 아가씨는 우리가 왜 그라는 지 영문을 모른 채 망설이더니 겨우 한 마리를 안았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의 시초였다 내가 뛰어 갔을 때는 이미 돌이가 그 조그만 강아지를 한 입에 물어 내동댕이쳐버렸다. 귀엽다고 집안에서만 키우던 강아지는 돌이의 야성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정말 순간이었다.

그 강아지는 강물로 뛰어들어 도망을 하고 나는 가까스로 돌이를 붙잡을 수 있었다. 그 아가씨는 그제야 사건의 심각성을 알았는지 눈물을 흘리며 난리를 쳤다. 그리고는 강아지를 안고 돌아가려는 것이었다. 나도 경황이 없어서 아가씨를 그저 달래고만 있었는데 첫째가 연락처라도 주라는 것이었다.

 

나는 돌아서 가는 그 아가씨에게 다가가서 그의 휴대전화에다 우리 집의 전화번호를 찍어주었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바로 이 부분에서 많은 핀잔을 들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개가 사건을 저질렀을 때 자기 개가 아닌 척 그리고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쳐서 집에 와 있으면 영리한 진돗개는 아무 일없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러나 양심이 뭔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따라가 연락처를 준 것이 화근이었다. 저녁 늦게 연락이 왔다. 동물병원인데 지금 수술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이건 사람도 아닌데 무슨 짓인지 짜증이 나면서도 안 갈 수가 없어서 옷을 갈아입고 찾아가 보니 수의사가 하는 말이 척추를 다쳐서 수술이 잘 돼도 하반신은 못쓰는 불구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 수의사도 도둑놈이었다.
아직 철없는 아가씨들을 이성적으로 설득하여 안락사를 시키든지 해야지 입원을 시켜놓고 경과를 보자는 것이었다.(내가 아는 어떤 분은 토끼를 키웠는데 다리를 다쳐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단다. 그런데 수의사가 부러진 뼈를 깁스하고 어찌어찌 했는데 나중에 치료가 끝나고 십 칠 만원의 의료비를 냈다고 했다. 토끼 열 마리도 더 살 수 있는 금액을 말이다.) 도저히 그 분위기에 그냥 있지를 못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귀엽게 여기는 애완 동물이라도 그렇지 울고불고 하는데 이건 영 성미에 맞지를 않았다. 한참 있으니까 구역질이 나는 것이 어떻게 하든지 그 장소를 피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래, 까짓 개 값 물어주면 되잖아. 너희들 하고싶은 대로 해봐라!' 하고는 집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아내와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개를 개같이 키워야지 이건 저거 조상(祖上)보다 더 위하니 문제라는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내일 무슨 연락이 오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줘 버리라고 결정을 내렸다.

 

이튿날은 오후 늦게까지 조용하였다. 그런데 밤 10시가 넘어서 전화가 왔다. 그 개의 주인 아줌마였다. 어제는 그래도 이성을 가진 것 같은 어른이 오늘은 달랐다. 마냥 울면서 하는 말이 아침에 개가 죽었단다. 그리고 슬퍼서 난리를 치는 그런 목소리였다. 물론 치료비를 보내라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래서 우선 내 생각에는 우리도 끈을 풀고 그 쪽도 두 마리나 데리고 나오면서 끈을 풀었으니 쌍방이 모두 약간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반씩 물자고 했다. 그러나 그 아줌마는 울며불며 난리를 쳤다. '그래 됐습니다. 구좌번호 불러요. 내 원하는 대로 보내주면 될 것 아니오.' 속으로 불만이 가득했지만 좋은 게 좋은 것, 아내더러 넣어주라고 하고 잊기로 했다.

 

"아이를 셋이나 키워도 이웃에 잘못해서 미안하다는 말 한번 하지 않았는데 이놈의 개새끼가 사람 굽실거리게 만들고 돈까지 물어주게 하는구나. 그래, 네놈이 저지른 일을 알기나 하는 거야!"
하면서 짐짓 아내는 돌이에게 윽박지르듯 나무랐다.
말귀를 알아듣기나 했는지 애처로운 눈빛으로 멀건히 쳐다만 보는 녀석, 어떻게 해야 할지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