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이 펄펄 끓던 내 나이 서른, 세상 어렵고 무서운 게 없었다. 막히면 뚫고 가두면 뛰쳐나가 오직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을 믿으며 타협이나 혀 꼬부라진 소리 모르고 살았다. 삶을 위해 자존심 마저 버리고 아무한테나 허리를 굽히는 일은 생각조차 않았다. 하늘 끝간 줄 모르게 고집을 세우고 고개 빳빳이 세우고 살았다.
노란 국화가 무서리 속에 깜깜한 밤을 지새는 늦가을,
상가(喪家)에서 술에 취해 자전거를 타고 가다 길바닥에 넘어져 온 몸을 갈아 부쳤다. 그러고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몰랐다. 술에 취하고 슬픔에 잠겨서 머리 속은 온통 엉망이 되어있었다.
같은 학교에서 함께 근무하던 선생님이 낚시를 갔다가 물에 빠져 죽었다. 평소 건강 하나는 둘째 가라하면 서러워 할 만큼 강건하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변을 당해서 당황했던 탓도 있었지만 그렇게 함께 어울려 생활하면서도 몰랐던 사실들이 막상 그가 떠나고 난 뒤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한 제자들이 찾아와 문상을 했다.
그냥 절 두 번 하고 마는 그런 문상(問喪)이 아니었다. 악머구리 같은 울음과 함께 엎어져 나뒹굴었다. 그리고 한참 뒤에 나오는 사설은 기가 막혔다.
"선생님, 지는 우야까요(어떡할까요)?"
처음에는 저 녀석들이 평소 선생님의 사랑을 듬뿍 받다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나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며 슬퍼서 저렇게 우는구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선생님은 아내 몰래 월급의 일부를 떼어 그들의 학비를 돕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니 이제 갑자기 든든한 후원자를 잃은 그들은 자신들이 당장 어떡해야 하는가? 라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사연들을 대하면서 아무 것도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던 나의 철부지 열정은 객기와 함께 차츰 숙지고 원색의 행동은 고개를 숙였다.
자존심을 뒤로 물리고 허리를 굽힐 줄도 알았다.
흔히 생속이라는 앙칼진 감정은 닳고 무지러져 성숙이란 늪으로 침잠해 갔다.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란 것을 알게 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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