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 전 둘째가 말단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취직을 했다. 말단이라고 하지만 취직이 어려운 요즘 사정을 감안하면 대단한 일을 해냈다. 우리가 취직하던 때로 따지면 까짓 거, 겨우 국민학교 나온 친구들이 치러는 시험 아닌가 할 것이지만 요즘은 경쟁이 말이 아니다. 거의 고등고시 수준이란다.
하긴 고등고시 패스해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겨우 밥벌이하는 변호사 정도지 않는가. 그러니 꿩 잡는 게 매라고 우선 편하고 밥벌이되면 말단이든 아니든 그게 대순가.
이왕 말이 났으니 하는 얘기지만 요새 세상에 직장이 좋고 나쁘고 판단기준은 얼마나 그 직장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그래서 오래되면 원로라고 대접받고 그 경험을 존중하는 그런 직장이 최고다.
그런데 컴퓨터가 나오고 사람들이 사는 세상 윤리와 정의는 바뀌었다. 새로 입사한 사원이 더 많은 지식 아니 더 빠른 정보 탐색 기술을 가지고 나타나는 바람에 지금껏 뽐내던 빛나는 경험은 아무런 가치가 없어져버렸다. 그러니 먼저 들어와 근무하던 직원들은 신참에게 밀리는 꼴이 된 것이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옛날에는 새로 부임하는 젊은 선생님들을 원로 선생님들이 이끌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교무실과 교실에서 돌아가는 모든 교육기자재와 사무기기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원로 선생님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 것이다. 편하라고 들여온 온갖 기계들이 낯설고 편의와는 영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원로선생님들에게는 이런 기계들이 젊은 선생님들에게 이것 좀 봐 달라 저것이 안 된다 하면서 오히려 무지의 치부를 드러내는 원인만 되고있다.
그렇다고 나이 많고 늙은 선생님들이 꼭 거치적거리는 존재는 아니다.
다만 원로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때 날리던 그 명성은 어디 가고 그저 밀림의 늙은 수사자처럼 갈기만 세운 채 어쩌다 한번 포효할 날을 기다리며 구릉의 가장자리를 지키는 꼴이 되었다는 것이다.
막내가 대학 진학을 할 때 물리반도체학과를 지원한다기에 그럴 듯하다고 동의를 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첨단의 학과일수록 수명이 짧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차라리 기름 묻히고 닦고 나사를 조이는 정비를 택하라고 권했다. 가장 원시적인 분야, 다른 사람이 거들떠보지 않는 그런 분야가 가장 큰소리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그러면 세월이 흐른 후에 나름의 노하우가 자부심으로 키워져 가슴을 펴고 걸어갈 것이다.
오늘도 열심히 노트북을 만지는 내 앞을 나도 모르는 사이 세상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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