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

『 북소리 』

일흔너머 2008. 8. 1. 11:25

 

대구에서 유명한 팔공산을 가려면 몇 군데 삼거리가 있지만 그 중에도 파군재삼거리가 유명하다. 동화사와 파계사 두 곳으로 나뉘는 갈림길이기 때문에 제법 널찍한 로터리에 고려의 시조 왕건의 목숨을 구한 충신 신숭겸 장군의 동상이 있다. 인도는 넓게 있으나 보행자는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 저녁시간은 북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자신이 타고 다닐 새 자동차의 미등(尾燈)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의 눈처럼 켜둔 채 간단한 제물을 차린 상을 앞에 두고 절을 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고사(告祀)를 지내는 것이다. 배가 출출하고 심심하면 찾아가 공짜로 술과 과일 그리고 몇 점의 돼지고기도 쉽게 얻어먹을 수 있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우리 집 막내는 한곳에서 떡과 과일을 얻어서는 옆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바나나가 있으니 그쪽으로 가자고 한일도 있다. 이렇게 골라 먹을 만큼 평일에 서너 팀이 북을 울리며 고사를 지낸다. 경기가 좋아서 자동차가 많이 팔리는 경우나 토요일이면 대여섯 팀이 북을 울린다.

현대과학의 대표적 산물이라는 자동차를 앞에 두고 가장 어리석은 미신인 고사를 지내는 것이 보기에도 딱하고 불합리하다. 이런 일은 우리들 지금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는 말로는 합리와 과학을 부르짖지만 행동과 실천은 비합리적인 것을 쉽게 따르고 구차한 변명을 한다.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훌륭했다고 자부하는 가운데 미신이나 무속 같은 너무 비과학적인 것까지도 전통과 혼동하여 왕왕 엉뚱하게 선전되고 매스컴에서 부풀려 보도되기도 한 결과이다.

요즘은 점집이 서울의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있다는 보도가 엊그제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을 이용한 화상점집도 소개되었다. 이런 것은 미신이라고 딱 잘라 나쁜 점을 말하지 못하는 매스컴이 오히려 문제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미스터리니 무어니 하면서 시청률과 흥미위주로 무속(巫俗)과 전통을 혼동하여 무차별적으로 보도하는 것도 자제해야한다.

지방마다 가지는 전통과 점복(占卜)을 쫓는 미신(迷信)은 구별되어야 한다.
조그만 항구도시에서 풍어를 기원하는 풍어제(豊漁祭)나 농촌의 풍년제(豊年祭)는 마을의 화합과 결속을 다지는 의미가 큰 전통이다. 이런 축제는 널리 홍보하고 오히려 지원 육성하여 발전 시켜야 한다. 하지만 미신은 타파 되어야한다.

자동차의 경우가 바로 그런 미신이 아닌가.
평소 자동차가 달리지 못하고 고장이 나던가 아니면 연료가 떨어졌을 때 무당을 불러 굿을 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북을 두드려 차가 간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차가 고장이 나서 가지 않으면 가까운 카센터(수리점)를 찾는다.

하지만 아직도 새 차를 사면 대부분의 운전자가 고사를 지내는 우스꽝스런 현실이 바로 내 곁에 있다.

하긴 노벨상까지 탄 대통령도 지관 말대로 부모 산소를 옮기는 판이니…
구태여 따지지 말자. 그냥 지나가는 남의 굿판이다.
옛말처럼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