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

『 삼거리 김 순경 』

일흔너머 2008. 8. 2. 09:21

 

운전이 서투른 초보운전자가 교통순경을 만나면 마음이 놓이고 혹 잘못이 있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서 걱정과 근심이 사라져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정은 달라서 그렇지를 못하다. 평소 잘 운전해 가다가도 교통순경만 보면 잘못도 없으면서 괜히 마음이 두근거리고 혼란스러워 초보운전자에게는 오히려 운전에 방해가 된다.

 

자동차의 흐름이 원활하도록 지도하러 교통순경이 한곳에 오랫동안 있으면 오히려 흐름은 막히고 차들은 이상하게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시험을 치르는 학생처럼 스스로 마음이 굳어 실력발휘를 못하는 것이다.


노란 포니 승용차를 타고 다닐 때니까 십 수 년 전으로 생각된다.

가족들과 함께 해인사를 갔다.

해인사(海印寺)가려면 국도에서 홍류동 계곡으로 꺾어 드는 삼거리가 있다.

삼거리를 통과하려는데 교통순경이 차를 세우라고 신호를 하는 게 아닌가. 차안에 타고 있는 식구들은 모두가 나를 보고 또 무엇을 잘못하여 걸려들었는가 하는 눈치들이었다. 평소에 과속은 잘 하지 않는 습관이었고 신호등도 없고 추월도 하지 않았는데 왜 서라고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교통순경은 의아해 하는 나를 보고 후진을 하라고 하였다. 옆에서 따라오며 핸들을 이리저리 움직이도록 지시해 가며 하는 행동이 자동차 교습소에서 하는 지도교사와 흡사 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후진해 오던 길을 가리키며 하는 말이,

"저 곳은 로터리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돌아서 가셔야 합니다.

아까 간 것은 중앙선을 넘어 가는 것이 됩니다.

자 돌아보십시오. 됩니까?

예, 그렇지요.

자 그럼 할 수 있겠지요?......."


차츰 나와 그 교통순경이 멀어지면서 서야하는가 아니면 그대로 가야하는가? 나는 과연 이대로 가도 되는가? 의아해서 계속 백미러로 그 교통순경을 보았고 그 순경은 또 다른 운전자를 그렇게 교육하고 있었다.

가족들 모두가 처음으로 맛보는 교통순경의 친절한 지도였고 나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다른 나라에 갔다 온 기분이었다.


얼마 전의 일이다.

문경에서 친구의 혼사가 있어서 축하도 할 겸 오랜만에 바람도 쐴겸 해서 집사람과 나섰다. 바로 집 앞의 도로에서 정신 차리지 않고 둘이서 얘기에 팔려 신호위반을 하게 되었다. 교통순경이 차를 세우고 면허증을 제시하라고 하여 평소 어디에다 두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탓에 한참을 찾아 주었다. 그리고 멀리 잔치에 나서는 길인데 이야기하는 중에 깜빡 그랬노라 변명 아닌 변명으로 실수를 인정하였다.


집사람은 자신이 범칙금을 납부해야 하므로 실제 운전한 나보다 더 답답하였는지 가벼운 것으로 해달라고 먼저 애걸하였다. 처음에는 벌점이 얼마에 범칙금이 얼마라고 으름장을 놓더니만 막상 사인하라고 내놓는 범칙금 쪽지에는 일금 만원으로 범칙내용도 희미하게 적혀서 잘 읽기가 어려웠지만 보행자보호위반인가로 되어있었다.


속으로는 범칙금이 적어서 좋았다. 그래서 둘이서 합창으로 고맙다(?)고 인사하고 이일이 하루를 주의하라는 기미로 알고 다녀왔지만 이런 경우는 운전자에게 보통 다반사(茶飯事)다.

만약 자신이 저지른 과실대로 범칙금을 물게 되는 경우는 공연히 화가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다"고 할 때 가래가 무엇인지 아는가? 라고 물으면 요즘 젊은이들은 대부분 모른다. 농부들이 논에 물꼬를 막을 때 쓰는데 길이가 무척 길다. 적어도 삼사 미터는 되는 것을 팔을 뒤로하여 그 가래를 옆으로 가로질러 가지고 다닌다. 도시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시골의 평화로운 모습이다. 교통량이 거의 없는 시골길에서는 좌측통행도 필요 없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니 무엇이든 아무렇게 방치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그러나 도시에서는 그럴 수 없다.

많은 교통량을 소화해 내기 위해 여러 규칙과 법을 만들고 질서를 지켜야한다. 그 목적은 규칙과 질서를 지켜서 원활한 소통과 함께 자기를 보호하고 재산을 보호하며 스스로 안전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통순경이 과속하는 운전자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속도계(흔히 이것을 총이라 부른다.)를 도로변에 설치하고 단속을 시작하면 이내 운전자들은 반대편에서 오는 운전자에게 하이 빔(트럭들은 생활무전기도 동원된다.)으로 연락하여 단속이 있음을 알려주고 신호를 받은 운전자는 금방 속도를 늦추어 단속을 피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모든 운전자는 그것을 불문율처럼 지키고 심지어 영업용은 영업용끼리 화물차는 화물차끼리 서로의 유대관계로 인식하고 알려주고 감사해 한다.

올바른 지도단속이면 서로 피할 이유도 없고 자신의 운전습관도 고치는 계기가 될 텐데 굳이 합심단결(?)하여 피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경제적인 손해도 싫지만,

예의를 깍듯이 차린다는 핑계로 거수경례를 하며 다가와 실수한 운전자를 징그럽게 비웃듯 내려다보며 해대는 교통순경의 주관적인 법 해석이 역겹고, 삼거리의 그 김 순경처럼 어떻게든 안전(安全)하게 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는 탓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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