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냉면에 대하여 』

일흔너머 2008. 9. 7. 23:27

 

 [ 대구 팔공산 관봉(일명 갓바위)의 약사암에서 일금 천 원에 주는 대중식사입니다. ]

 

요즘은 무더운 여름철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냉면을 즐긴다.
우선 시원하고 구수한 육수가 사람들의 입맛을 당기고 쫄깃한 면이 먹는 즐거움을 만끽하도록 혀를 감고 돈다. 본시 냉면은 겨울이 긴 북방에서 겨울나기를 위하여 만들어 먹는 김치에서 그 역사를 찾아야한다.

 

함경도지방이나 평안도지방에서는 가을에 김장을 담을 때 온 동네가 큰일을 치른다. 한집에서 보통 여남은 개의 독을 묻고 김치를 저장하게 되므로 소를 잡아 고기를 집집마다 나눈다. 고기는 김치를 담을 때 속으로 쓴다. 그리고 뼈를 고아서 그 국물을 여러 독에다 나누어 담고 무나 고추 등을 넣어 소금간을 하여 겨우내 퍼다 먹는 것이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벌써 오뉴월이 되는 것이 북방의 절기다.
들이 적고 산이 험한 함경도에서는 특히 메밀농사를 많이 한다. 그 메밀로 국수를 만들어 겨울 동안 삭혀진 동김치 국물에 말아먹는 것이 바로 냉면이다. 그러니까 오랫동안 삭혀진 동김치 국물은 요즘 즉석에서 만들어진 육수와는 그 맛의 깊이가 다르다. 시큼하면서 시원하고 감치는 세월의 맛을 아무리 조화롭게 만든다한들 어찌 즉석에서야 쉽게 그 흉내를 낼 수가 있겠는가?

 

강원도의 막국수와 냉면을 비슷하게 생각하고 말아내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막국수는 그야말로 메밀국수를 별 양념 없이 마구잡이로 말아 구수한 국수의 맛으로 먹는 것인데 세월이 고명을 만들게 하였고 상술이 가미되어 담백한 맛을 잃어 가는 것이다.

 

냉면에 한가지 별종이 있느니 그것은 꿩고기를 사용한 꿩냉면인데 평양지방에서 즐긴 것이 널리 퍼진 것이다. 요즘은 꿩 대신에 닭고기를 사용하다가 농가에서 꿩을 사육하고부터는 곧잘 꿩을 이용한 냉면을 볼 수가 있다. 그러나 오래 보관한 탓으로 별로 좋지 않은 냄새가 나는 경우가 있다.

 

흔히 맥주는 목구멍 깊숙한 곳으로 구수한 맛을, 위스키는 혓바닥으로 뜨거운 맛을 , 스카치는 혀끝으로 톡 쏘는 맛을 본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냉면을 좋아하는 사람은 먹는 방법부터가 다르다. 요즘처럼 가위로 면을 잘라서 먹기에 편하도록 하지를 않는다.

 

젓가락으로 면과 고명이 섞이도록 휘 저은 다음 우선 육수를 한 모금 쭉 들이키고 나서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한 가닥은 입에 물고 그 끝은 그릇에 담겨 있는 상태로 쭈욱 빨아 당기는 것이다. 좀 별나지만 결론적으로 사리의 한 가닥은 목구멍을 벌써 넘어가고 반대편 가닥은 그릇에 담겨 있어야 시원한 냉면의 진짜 맛이 난다는 것이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은 '생활의 발견'에서 음식을 먹을 때 맛있다고 후룩후룩 쩝쩝 소리를 내는 것이 음식을 만들어준 사람의 성의에 보답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차피 예의를 너무 지키면 반감하는 것이 음식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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