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여름에는 국민학교 동창생 부부와 함께 여름 휴가를 떠났습니다.
함께 가지 못하는 다른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녀석과 세상에서 가장 성질 급한 녀석, 둘이 가면 잘 어울리겠다."
라며 부러움 반, 걱정 반으로 놀렸습니다.
사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함께 간 그 친구는 행동도 번개같이 빠르고 말도 다른 사람이 대답하려고 하면 벌써 자신은 다 안다는 듯 '알았다. 알았다…….'를 서너 번 연발하며 가버리고 맙니다.
거기다가 종교도 달라서 그 친구는 카톨릭 신자고 나는 불교 신자라서 어디 하나 어울릴 것도 없는데 함께 떠나기로 한 겁니다.
세상 다 그렇듯 미리 걱정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살아보면 우리들이 미리 걱정하는 것과 달리 벌어지는 것이 삶이듯 우리 두 부부는 크게 어긋나지 않고 2박 3일의 여행을 마쳤습니다.
여기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는 것은 무슨 불편함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혹 의견의 충돌이 있어서 길을 가다가 다툰다거나 하는 그런 걸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둘 사이에 마음이 상하여 겉으로 표현은 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는 그런 것을 말하는 겁니다.
하긴 조그만 불편은 많았습니다.
이 친구 성질이 얼마나 급한지 걸음이 느리고 우물쭈물하는 내가 도저히 그 급한 성질에 맞장구치지 못한 겁니다.
'환선 동굴'인가를 구경하러 갔을 때는 내가 내려서 동굴 입구에 도착했을 때 벌써 입장권을 사서 내게 내밀며 구경하고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부부가 12인승 승합차를 타고 갔는데 운전을 그 친구가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내려서는 입장권을 구입한 겁니다.
그리고 내가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까 그 친구는 벌써 차에 시동을 걸어서 에어컨을 켜두고는 어디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으며 내게 하나 먹으라며 내미는 겁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다음에는 어디가지?"
하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옳게 구경은 했느냐고 물으니,
"딱 보니 뻔한데 뭐 그리 오래 볼 것 있나?"
하는 겁니다.
이 친구는 식당을 경영하는데 손맛이 좋아서 어디에서 식당을 차려도 손님이 줄을 섭니다.
이번 여행에서 점심은 구경간 곳의 이름난 음식을 사 먹고 아침과 저녁은 이들 부부가 직접 하는 겁니다. 우리는 거저 느지막이 일어나 다 해놓은 밥상을 받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맛있게 끓인 된장국에 하얀 쌀밥을 먹으며 미안하고 또 우리도 뭘 해야될 것 같아서 설거지는 우리가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 성미에 꾸물거리는 내가 보기 싫었든지 '저리 비켜라'고 하며 설거지까지 다 해버리는 겁니다. 그리고는 숭늉을 맛있게 끓이고 심지어 커피까지 준비해서 우리는 거저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었습니다.
나는 돌아와서 이번 여행이 어떠했나를 묻는 친구들에게,
"특급요리사와 운전사를 데리고 친구부부와 여름 휴가를 다녀온 셈이지."
하고 웃었습니다.
물론 그 친구를 요리사나 운전사로 천대한 것이 아니라 내 친한 친구 중에 이런 멋쟁이 친구가 있다는 것을 자랑한 겁니다.
구태여 흠을 잡으라면 성질이 조금 급한 것이 문제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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