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늑대 』

일흔너머 2008. 9. 22. 11:37

 

 

야망과 객기로 가득하던 학창시절,
말없이 대구 달성공원의 늑대 우리를 지키고 있는 때가 많았다.
우리 안을 쉼 없이 뛰는 모습에서 안타까운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좁은 공간에서 팔자(八字)를 그리며 휘청휘청 뜀박질을 하는 늑대의 눈은 시베리아의 광활한 대륙을 보는 듯 했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자신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야망을 보는 듯 했다. 한 마디로 금방 잡혀온 늑대는 자신의 야성을 감추지 못하고 허우적대는 꼴이 그 당시의 나와 너무 흡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늑대,
흔히 보는 개와는 달리 눈빛에서부터 벌써 야성이 빛난다. 개는 늑대가 길들여진 것이라고 하지만 아무리 사납고 큰 개라도 늑대의 그 야성을 따를 수 없다. 거기다가 셰퍼드와 달리 날씬하지도 않으면서 꼬리를 위쪽으로 꾸부리지 않고 항상 밑으로 축 늘어뜨린 채 마라톤 선수가 달리듯 매끄럽지 못하고 껑충껑충 어설프면서도 끝이 없는 달음질은 늑대의 본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특히 기분 나쁘게 하늘을 우러러 울부짖는 늑대 본래의 울음은 그 울음소리를 듣는 사람이나 들짐승이나 가릴 것 없이 모든 생물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으는 기술을 가진 것 같다.

 

늑대,
귀를 꼿꼿이 세우고 눈은 비스듬히 찢어져 보기에도 사랑스런 동물은 분명 아니다. 녀석의 다리는 길고 장거리에 적당하게 뻗어 있으나, 코는 뾰족하게 뻗어 길고 목덜미의 털이 추위를 견딜 만큼 넉넉하게 많이 있어 들짐승이란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어떤 때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다른 동물의 사냥감을 훔치기도 한다. 심지어 죽은 동물의 시체까지도 먹지만 가장 늑대다운 근성을 나타내는 것은 물만 먹고도 오륙 일을 버텨 낸다는 질긴 생존성에 있다. 식욕도 대단하여 작은 송아지나 염소정도는 한꺼번에 먹어 치우기도 한다. 이렇게 우수한 자질에 집단 생활을 하여 어지간한 고비에도 살아남는 우수한 생존능력이 있다.


사랑에 실패하고 남자에게 배신당한 여자들이 흔히 하는 말로,
'세상 모든 남자는 다 늑대다'라는 이야기는 늑대의 야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속내를 쉬 드러내지 않는 음흉한 성질과 다른 동물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노획물까지도 훔치는 늑대의 특성에 남자를 빗대어 하는 말이다.

 

늑대,
음흉한 도둑.
하지만 젊은 날 나는 그 늑대를 사랑했었다.
쉬지 않고 뛰는, 마치 모든 부양가족을 위해 평생을 땀흘리며 달리는 괴롭고 고독한 남자의 고달픈 삶을 보는 것 같은 인상을 주었기 때문이다. 속이고, 속고, 다투고, 경쟁하며 오직 이기려고만 하는 세상이란 이름의 정글에서 늑대처럼 그렇게 숨을 죽이고 속을 감추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다.
누가 뭐라면 그저 한번 힐끔 쳐다보고 속을 드러내지 말고 말없이 돌아서 가던 길, 내 길을 뛰어 가야지.
늑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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