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궁예(弓裔) 이발관 』

일흔너머 2008. 10. 7. 13:29

 

 

삼국지(三國志)를 읽다보면 재미난 이야기 속에 평소 우리의 삶에 대하여 조용한 훈계(訓戒)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알면서도 그것을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다.


특히 그 중에서도 외모(外貌)만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든지 겉으로 호언장담(好言壯談)하는 언변을 기준으로 평가를 내려 크게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를 말한다.

 

하나는 흔히 인용되는 읍참마속(泣斬馬謖)으로 그렇게 뛰어난 재주를 자랑하는 제갈량조차도 그의 호언에 넘어가서 큰 방어선에 실수를 남기는 마속(馬謖)의 경우인데 울면서 사랑하는 부하를 처단하는 아픔을 나타낸 고사성어(古事成語)다.

 

둘째는 자를 사원(士元)이라 하는 양양 사람 방통(龐統)의 일이다. 주유(周瑜)에게 연환계를 주청하여 조조의 대군을 적벽강의 고혼으로 만든 장본인이며 사마덕조 같은 이는 복룡(伏龍), 봉추(鳳雛) 두 사람 중에서 한 사람만 얻어도 천하를 편안케 할 수 있다고 한 바로 그 봉추다.

 

한 사람의 인재도 아쉬운 그 난세(亂世)에 손권에게 홀대받고 유비에게 와서 조그만 변방 뇌양현( 陽縣)의 원으로 취임한 후 술로 세월을 보내다 장비에게 그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주고는 노숙이나 제갈량의 추천서를 내 놓는다는 고사는 한마디로 장쾌하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보고 듣고 알고 있으면서 좀처럼 실천하지는 못한다.
가까운 여자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방통 같이 재주 있는 친구가 있었다. 평소 워낙 바른 말 잘하고 또 윗분들의 잘못을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는 용감한 성격의 정의한(正義漢)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런 저런 학교의 어려운 일은 도맡아 몇 년간 열심히 했지만 결국 승진도 못하고 남자중학교로 옮기게 되었다.

 

자주 만나는 처지가 아니라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소문에 그 친구가 [궁예이발관]을 차렸다고 했다.
"이게 뭔 소린가?"
많은 사람들이 명예퇴직을 해 대던 때라 젊은 나이지만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이발관을 개업했는가 싶어서 깜짝 놀라 주위에 물었다.

 

다른 선생님들의 말을 들으면 방과후 이발을 하지 않아서 텁수레하게 있는 학생을 잡아다가 원래 배운 이발솜씨는 없고 해서 모양 좋게는 안 되지만 그냥 이발기계로 빡빡 밀어 준다는 것이 이름하여 궁예(弓裔)스타일의 이발관(?)을 한다는 것이다.


남자중학생은 오히려 그것이 시원하고 공부하는데 방해되지도 않고 해서 제법 고객(?)이 있고 일반 이발관 요금의 이 삼십프로 정도인 천 원 정도를 받아 모아서는 불우이웃 돕기를 한다는 것이다.

 

말로만 국민을 위하고 경제를 살리며 온 천하를 떡 주무르듯 하는 요즘의 그런 치자(治者)가 아니라 그는 진정 백리지재(百里之才)가 아닌 치중별가(治中別駕) 같은 막중(重)한 소임(所任)이 합당한 천리준총이 무능한 사랑(?)의 이발사가 된 것이다.
뇌양현에 처박힌 방통 같아서 인재를 무시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아무리 걸출한 인재(人才)라도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낙봉파에서 뜻을 못다 이루고 봉추는 떨어지고 만다.
그래서 아름다운 그 친구가 요즘 같은 어려운 때는 더욱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