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경

도량석 토굴가(懶翁土窟歌) /정연스님

일흔너머 2009. 9. 6. 12:02

 

<사진> 양산 통도사에 봉안돼 있는 나옹스님 진영  

 

나옹스님 토굴가(懶翁土窟歌) 도량석 - 정연스님

청산림(靑山林) 깊은 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송문(松門)을 반개(半開) 하고 석경(石徑)에 배회(俳徊)하니
녹양춘삼월하(錄楊春三月下)에 춘풍(春風)이 건 듯 불어
정전(庭前)에 백종화(百種花)는 처처에 피었는데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그 중에 무슨 일이 세상에 최귀(最貴)한고.
일편무위진 묘향(一片無爲眞妙香)을
옥로중(玉爐中)에 꽃아 두고
적적(寂寂)한 명창하(明窓下)에 묵묵히 홀로 앉아
십년(十年)을 기한정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하니
증전에 모르든 일 금일에야 알았구나.

일단고명심지월(一段孤明心地月)은 만고에 밝았는데
무명장야 업파랑(無明長夜業波浪)에 길 못 찾아 다녔도다
영취산 제불회상(靈鷲山諸佛會上) 처처에 모였거든
소림굴 조사가풍(小林窟祖師家風) 어찌 멀리 찾을소냐.

청산은 묵묵하고 녹수는 잔잔한데
청풍(淸風)이 슬슬(瑟瑟)하니 이 어떠한 소식인가.

일리재평(一理齋平) 나툰중에 활계(活計)조차 구족(具足)하다.
청봉만학(千峯萬壑) 푸른 송엽(松葉)
일발중(一鉢中)에 담아두고 백공천창(百孔千瘡) 깁은 누비
두 어깨에 걸었으니 의식(衣食)에 무심(無心) 커든
세욕(世慾)이 있을 소냐.

욕정이 담박(欲情談泊)하니 인아사상(人我四相) 쓸 데 없고
사상산(四相山)이 없는 곳에 법성산(法性山)이 높고 높아
일물(一物)도 없는 중에 업계일상(法界一相) 나투었다.

교교(皎皎)한 야월(夜月) 하에
원각산정(圓覺山頂) 선 듯 올라
무공저(無孔저)를 벗겨 불고 몰현금(沒絃琴)을 높이 타니
무위자성진실락(無爲自性眞實樂)이 이중에 갖췄더라.

석호(石虎)는 무영(無詠)하고 송풍(松風)은 화답(和答)할제
무착영(無着嶺) 올라서서 불지촌(佛地村)을 굽어보니
각수(覺樹)에 담화(曇花)는 난만개(爛慢開)더라.
나무 영산회상 불보살(南無靈山會上佛菩薩)

(해설)
1) 청산림(靑山林) 깊은골에 일간토굴(一間土窟) 지어놓고
나무가 우거진 깊은 산골에 한 칸의 토굴을 지어 놓고

* 단어 : 일간토굴(一間土窟) 스님들은 여러 대중이 모여
스승을 의지 삼아 공부를 익혀가다 자신의 공부가 일정
수준에 이르러면 조용한 산 속에 부엌 하나 딸린 방 한 칸에
홀로 지내면서 깨우치기 위해 마지막 정진을 하는 곳.

2) 송문(松問)을 반개(半開)하고 석경(石耕)을
배회(徘徊)하니 소나무 문을 반쯤 열어 놓고 돌밭길을
포행(마음 공부를 챙기면서 천천히 산책하는 것)하니

3) 녹양(綠楊)춘삼월하(春三月下)에
춘풍(春風)이 건듯 불어 시절은 버들가지 푸른 춘삼월 봄날에
훈훈한 봄바람이 건듯 불어오고

4) 정전(庭前)의 백종화(百種花)는 처처(處處)에 피었는데
뜰 앞에는 여러 가지 이름 모를 꽃이 여기저기 만발하였는데

5) 풍경(風景)도 좋거니와 물색(物色)이 더욱 좋다
풍경은 말할 것도 없고 봄날의 싱그러운 자연의 빛깔들이
더욱 좋다

6) 그 중에 무슨 일이 세상에서 최귀(最貴)한고
이런 것 중에서도 무슨 일 세상에서
제일 귀하고 중요한 것인가?

* 참고 : 사람이 살면서 자식 낳고 부귀영화 누리면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무엇인지?
본래 나의 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생사(生死)가 무엇이며,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어떻게 하면 생사 번뇌에 끄달리지 않는지?
이 도리를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7) 일편무위(一片無爲) 진묘향(眞妙香)을
옥로중(玉爐中)에 꽂아두고
잠시의 인연화합에 의해 조작된 것이 아니며, 생멸하지 않고,
인과가 없고 번뇌가 없는 불생불멸하는
진짜 묘한 법(法)향을 옥향로에 꽂아 두고

* 단어 : 무위(無爲) 좀 어려운 개념인데, 원인이나
조건에 의한 인연에 의해 만들어지거나 조작된 것이 아닌 것
즉,생멸(生滅)을 초월한 절대적인 것.
즉 무상(無常)함에 대한 집착을 초월한 것.
이 것이 진짜 진묘한 향(香)이 아니겠는가?

8) 적적(寂寂)한 명창하(明窓下)에 묵묵히 홀로 앉아
아주 고요한 밝은 창가에 묵묵히 홀로 앉아서

9) 십년을 기한정(期限定)코 일대사(一大事)를
궁구(窮究)하니 한 십년은 죽었다 생각하고
이 도리(生死없는 도리)를
기필코 깨치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정진하니

* 단어 : 일대사(一大事) 대장부의 일 중에서
중요한 것이 많지만 그 중에 생사를 깨닫고,
나 자신을 요달하는 것이 가장 크고 중요한 공부 아닌가,
이 공부(도를 깨치는데)를 하는데 있어서 옛날 어른들은
세상사 잡념에 물들지 않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정신의 근기(根氣)도 강하여 빠르면
3일, 7일 늦어도 3년이면 깨친다고 했는데,
아무리 둔한 사람도 10년만 죽자고
붙잡고 메달이면 해결된다고 한다.

10) 증전(曾前)에 모르던 일 금일(今日)에야 알았도다.
위와 같이 하면 일찍이 모르던 일을
어느 날 갑자기 깨우쳐 생사뿐 아니라,
세상 이치, 자연의 이치가 한 눈에 들어 나 죽고 사는데
메이지 않고 세상사 그대로가 극락이요 불국토이겠지.

11) 일단고명(一段孤明) 심지월(心地月)은
만고(萬古)에 밝았는데 세상 사람 다 모르는 일을
나 혼자 훤하게 깨달아 마음의 달이 밝게 떠올랐는데,
알고 보니 그 것은 깨닫기 이전인 아주 오랜 옛날부터
밝게 떠 있었지만 모르고 지냈을 뿐 이였네.

12) 무명장야(無明長夜) 업팔랑(業波浪)에 길 못 찾아
근본 무지에 쌓여 있다보니 어둡고 긴 밤 같은 전생의
업과 현생의 업 속에 끌려 번뇌와 불안 속에서 참 행복이
무엇인지 모른 체 세속을 헤매고 다닌 것이지

13) 영축산(靈蹴山) 제불회상(諸佛會上)
처처(處處)에 모였거던 깨닫고 보니 부처님 생존 당시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설법하실 때와 같이
풀 한 포기 돌맹이 하나가 다 무상 설법을 하고 있는데

* 단어 : 영축산 : 인도에 있는 산으로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던 곳으로 유명한데
당시 부처님이 설법을 하시면 수많은 사람들과 뭇 짐승들과
천상의 사람 마저 모여들었다고 하는데,
깨닫고 보니 세상사, 풀 한 포기, 돌 하나 물소리 하나가
그대로 부처님 법문이 아닌 것이 없더라

- 일반인들이 잘 알고 있는 성철 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말도
깨친 자의 입장에서 보면 세상사 그대로가
법이라는 것으로 이해해도 별로 틀린 말은 아닐것이지만
더 큰 뜻은 말로 표현이 불가능하다

14) 소림굴(少林窟) 조사가풍(祖師家風) 어찌 멀리 찾을소냐
달마조사가 소림굴에서 면벽수도하면서
마음과 마음으로 전하는 불법을 어찌하여 멀리서 찾겠는가?
회광반조(回光返照)하여 자신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불성을
깊이 참구하여 밝혀야 할 것인데.

* 참고 : 부처님의 법맥을 이어 받은 사람을
조사(祖師)라 하는데 부처님의 28대 제사인
인도의 달마(Dharma)가 중국 당나라로 건너 와 보니
당시 당나라는 불교의 참 이치와는 거리가 먼
불교 경전의 글귀에만 매달리고 사찰을 짓고
탑만 쌓고 있었는데, 당 무제가 큰스님이
인도에서 왔다는 소문을 듣고 달마를 불러 절을 짓고
탑을 쌓은 자신의 공덕이 얼마나 큰 것이냐고 묻자
달마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말하고
불교의 참 이치.

(直指人心 見性成佛-사람<자신>의 마음을 바로 직시하여
그 성품을 바로 알면 곧 부처이다)인
불교의 선(禪)을 펼치기엔 여건이 맞지 않음을 알고
굴속에 들어가 수년 동안 나오지 않고
수행에만 몰두하였는데, 그 달마의 가풍이라는 것이
불교의 골수로서 말이나 글로 표현 할 수 없는
이심전심의 도리인 것이다.
- 이것은 본인이 직접 깨닫기 전에는
뭐라고 설명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도리이다

15) 청산(靑山)은 묵묵(默默)하고 녹수(綠水)는 잔잔한데
청산은 아무 말이 없고 맑은 물만 잔잔히 흐르는데

16) 청풍(淸風)이 슬슬(瑟瑟)하니 이 어떠한 소식(消息)인가
시원한 맑은 바람 슬슬 불어오니
이것이 어떠한 깨침의 도리인가?

* 참고 : 깨달음의 경지에서 보면
그야말로 자연 그대로 부처님 법아님이 없고,
희열이 아님이 없는 것인데 무지한 중생들은 좋다 슬프다,
사랑 한다 미워한다, 귀하니 천하니 분별심을 내는 것이겠지

17) 일리제평(一理齊平) 나툰 중에
활계(活計)조차 풍족하다
하나의 밝은 이치가 확연히 들어 나니
살림살이(닦아 놓은 마음, 어디에도 끄달리거나
집착하지 않아 대자유인이 된 마음)가 풍족할 수밖에

18) 천봉만학(千峰萬壑) 푸른 송엽(松葉)
일발중(一鉢中)에 담아두고
이렇게 깨친 다음에야 먹고 마시는데 메이겠는가?
천 개의 봉우리와 만개의 골짜기가 어우러진 깊은 산골의
맑은 물과 솔잎, 풀잎을 나무 그릇 하나에 담아
양식으로 일용하지만 기름진 진수성찬 보다 더 맛이 있을 것

19) 백공천창(百孔千瘡) 기운 누비 두 어깨에 걸쳤으니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데
입는 것에 무슨 관심이 있겠나?
백 구멍이 나면 어떻고 천 구멍이 나면 어떠랴,
임금 의 용포 보다 더 값진 것을.

* 단어 : 누비: 스님들이 겨울에 곁에 걸쳐 입는 외투

20) 의식(衣食)이 무심(無心)커든 세욕(世慾)이 있을손가?
의식주에 관심이 없는데
세상사 욕락(慾樂)에 무슨 관심이 있겠는가?
탐·진·치 삼독(三毒)이 다 욕심 때문인데,
욕심이 없으면 근심이 없는 법, 그대로가 바로 극락이겠지

21) 욕정(欲情)이 담박(淡泊)하니
인아사상(人我四相) 쓸데없고 부질없는
세속적인 욕심이 없이 깨끗해지니
잘못된 집착들이 붙을 곳이 없고

* 단어 : 인아사상(人我四相)
이것도 좀 난해한 불교의 전문 용어인데,
불교의 핵심 경전 중의 하나인 금강경에 나오는 말로
부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깨달음을 얻는데 방해가 되는 4가지의
잘못된 집착 같은 것을 일컫는 말이다

아상(我相 : 나라는 것이 생멸 변화를 벗어난
영원한 존재인 실체적인 내가 존재하는 것으로
집착하는 관념-잘못된 것,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생각하는 것),

인상(人相 : 인간에게 각자의 자아가 있다고 생각하고
개인은 저마다 영혼의 주체라는 관념으로 나와 구별하여
그 대상을 남이라고 생각하는 관념),

중생상(衆生相 : 인간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을 보고, 피부로 촉감을 느끼는
그 육체가 중생<인간>이라고 오해하는 관념),

수자상(壽者相 : 위와 같이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는 5온이 임시로 화합한 상태로 잠시 존재하는 것을
마치 자아가 일정 기간 수명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수명의 길고 짧음 등에 대해 오해하여 수명에 집착하는 관념)

22) 사상산(四相山)이 없는 곳에 법성산(法性山)이
높고 높아 위와 같은 4상이 없으면 자연이
진짜 나의 참 모습(眞我)이 훤하게 들어 날 것인데
그 것이 진짜 나의 법성(法性: 참모습, 참 부처)일 것이다.

23) 일물(一物)도 없는 중에 법계일상(法界一相) 나투었다.
이쯤 되면 만물이 부처 아님이 없고 법문 아님이
없는 가운데 나(진짜 참 나)의 법성만이 뚜렷이 밝을 것이다.

24) 교교(皎皎)한 야월하(夜月下)에
원각산정(圓覺山頂) 선뜻 올라 달빛이 교교한 달밤에
완전히 깨달은 열반의 언덕에 선뜻 올라서서

* 단어 : 원각산정 깨달음의 경지- 완전히 깨달아
아무런 걸림이 없는 부처의 경지

25) 무공저(無孔笛)를 빗겨 불고
몰현금(沒絃琴)을 높이 타니
이렇게 되고 나면 형상에 집착함이 없을 진데
구멍 없는 피리를 불지 못할 이유가 없고,
줄 없는 가야금을 타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26) 무위자성(無爲自性) 진실락(眞實樂)이 이중에 갖췄더라

인위적으로 조작되고 생멸을 하지 않는 진짜 자신의 참모습,
근본 마음, 즉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불성
(이것을 아무 것도 모르는 일반 사람들이 뜻도 모르면서
자신이 곧 부처다 라고 하는 말)을 자성(自性)이라 하는데,
깨달아 자성이 확연히 들어 나면
그 것 보다 더 한 즐거움이 어디 있겠는가?

27) 석호(石虎)는 무영(舞詠)하고
송풍(松風)은 화답(和答)할 제 얼마나 즐거운지
돌사자가 춤을 추고 솔바람이 화답하겠는가?
깨달음의 희열은 깨달은 이만이 아는 법

28) 무착령(無着嶺) 올라서서 불지촌(佛地村)을 굽어보니
무착령은 위에 나오는 무위(無爲)와 비슷한 뜻으로
어떤 것에도 집착하거나 얽메이지 않는 깨달음의 경지,
부처의 경지에서 아래를 내려 보면
모든 세상사 그대로가 부처 아닌 것이 없고,
그 자체가 그대로 부처일 것인데

29) 각수(覺樹)에 담화(曇花)는 난만개(爛 開)더라
온 천지가 부처님 세계고 극락이라
그대로 다 깨달음의 나무에 우담바라가 만발하게 피었더라.

* 단어 : 담화(우담발화, 우담바라)
인도의 전설에 있는 상상의 꽃으로 3천년 만에 한 번 핀다는
상서로운 꽃이며, 부처님이나 전륜성왕이 세상에 태어날 때
그 복덕으로 말미암아 감득해서 꽃이 핀다고 한다.

그런데 상상의 꽃이라기보다는
깨달음 자체나 불성을 형상화한 꽃으로 생각하면 될성 싶다.

30) 나무 영산회상 불보살 (南無 靈山會上 佛菩薩)
영축산에서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모인 모든 불법승
그리고 사부대중께 머리 숙여 귀의합니다.



나옹혜근 선사 - 억불시대에도 ‘和尙’으로 추앙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靑山兮要我以無語),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蒼空兮要我以無垢).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聊無愛而無憎兮),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如水如風而終我).”

‘청산은 나를 보고’란 제목으로 유명한
고려 말 선풍을 진작한 고승 나옹혜근(懶翁惠勤, 1262~1342)
선사가 지은 선시다. 지공선사, 무학대사와 더불어
한국불교의 3대 화상으로 추앙받고 있는 나옹스님은
고려 공민왕과 우왕의 왕사를 맡으며 국가와 불교발전에
크게 기여한 선승이다.

나옹스님은 13 20년(충숙왕 7) 경남 영덕에서 태어나
20세에 문경 묘적암에서 요연 선사를 은사로
“삼계고해에서 해탈해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입산한 스님은 양주 회암사로 옮겨
수년간의 치열한 정진 끝에 깨달음을 얻었다.

이후 스님은 1347년 원나라로 유학을 떠나 10년 동안 머물며
지공선사와 평산처림 선사 등을 만나 가르침을 배우고
법을 인가받았다. 39세 나이에 유학을 마치고
고려로 돌아온 스님은 공민왕의 간곡한 요청에
신광사에 머물며 수행 정진했다.

결국 왕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산천을 주유하며
인연 따라 법을 설하다 1371년 공민왕으로부터
왕사로 책봉 받는다. 만년에는 회암사 중창에
온 전력을 기울였지만, 1376년 5월 중신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밀양 영원사로 추방되던 중
여주 신륵사에서 입적했다.
때문에 신륵사에는 나옹스님의 비와 부도가 모셔져 있다.

출처 : 불교인터넷음악방송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