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과연 그럴까? 』

일흔너머 2010. 2. 26. 23:24

 

 

어제는 예상보다 많은 봄비가 내렸다.
강물이 불은 것도 궁금하고 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도 볼 겸해서 강가로 나갔다. 바람은 아직 한겨울의 차가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갈 때는 바람을 등지고 걸으니 모르겠지만 나중에 집으로 돌아올 때가 문제다. 바람을 마주하고 걷는 것은 어지간하면 피해야 한다. 환절기에 감기라도 걸리면 손녀들에게 옮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막혀 있어서 바람이 없는 선열 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가장자리로 걸으면 서너 바퀴만 걸어도 운동이 된다. 경사도 제법 있어서 한참을 걷다보면 강가를 걷는 것보다 오히려 더 힘든다.


선열 공원은 말이 공원이지 말끔히 단장된 공동묘지다.

아직 비석을 일일이 읽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삼일운동 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분, 또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한 훌륭한 애국지사, 이런 분들을 모신 곳이다. 훌륭한 분들이거니, 나라를 지키신 분들이거니 여기며 내 앞만 바라보고 운동을 하러 왔으니 그저 열심히 걸을 뿐이다.

 

다들 나처럼 그렇게 걷고 쉬고 하는 이들이 공원에는 많다. 방향은 각자 취향대로 걷는다. 사람들은 서로 다가오기도 하고 또 멀어지기도 한다. 햇볕이 좋은 날은 걷지 않고 그냥 벤치에 앉아서 쉬는 노인네들도 많다.

 
두어 바퀴를 걷고 있을 때였다. 흔히 하는 이야기였다.
"할매(할머니)는 지금 죽으면 복(福)이지."
죽는 것이 복이라니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얼핏 짐작은 간다.


노인들끼리 앉으면 습관처럼 '내가 죽어야지. 그래, 내가 죽어야지.'하는 말이다. 물론 '그 정도 살았으니 더 이상 험한 일 당하기 전에 죽으면 차라리 낫다.'는 말이다. 할머니가 살아가는 현재 상황이 썩 좋지 않다는 복선이 깔린 이야기다. 스쳐 지나면서 들은 한마디가 공원을 서너 바퀴나 돌아도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말이 떠올랐다.
선열공원에는 훌륭하다는 분들이 많은 후세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며 누워있다. 내일 모레가 삼일절, 그 기념식에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내노라'는 사람들이 다 모여 고개를 숙이고 식을 올린다. 입에 침이 마르게 돌아가신 선열들을 칭찬한다.

 

그러면 여기 공원에 누워 절을 받는 선열들은 복 받은 것일까?
그 노인 말처럼 죽어서 복이란 말인가?
지난 가을에 떨어져야할 저 떡갈나무 이파리는 봄비가 내리고 새싹이 돋는 춘삼월이 내일인데도 아직 떨어지지 않고 미련을 떨고 있는데,
"할매(할머니)는 지금 죽으면 복이지……."
과연,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