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어머님께 묻고 싶다 』

일흔너머 2010. 3. 17. 17:20

 

 

둘째가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와 함께 잠시 친정이라고 찾아왔습니다. 절간같이 조용하던 집이 요즘은 제법 사람 사는 훈기가 납니다. 할 일도 더 많아졌습니다. 혹시 아이가 잘못 건드릴 물건들을 치우고 들어가지 못하게 담을 쳤습니다.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손녀는 아무거나 만지고 어디 안 들어가는 데가 없습니다.


보고 있으면 온갖 생각이 납니다. 아직 솜털로 덮인 뽀얀 살결에 눈길만 줘도 방글방글 웃는 밝은 표정, 정말이지 「티 없이 맑다」는 표현이 제격입니다. 우리가 어릴 때도 저랬을까?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시지만 엄마한테 물어보고 싶습니다.

 
"엄마, 나도 어릴 때 저렇게 귀여웠습니까? 방글방글 웃고 토실토실했습니까? 잔병치레를 하여 마냥 울지는 않았습니까?"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어머님이 곁에 계신다면 퇴직을 하고 이제 저도 시간이 넉넉하여 함께 지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어머님이 다시 오실 리 없고 시원스레 답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저는 대충 압니다.
어머님이 제게 어떤 말씀을 하실 지 짐작이 갑니다.
「어려웠다. 그래서 아무 것도 살피고 둘러볼 여유가 없었다」
고 하실 겁니다. 없이 살아서 자식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아이들 키울 때도 그랬는데 하물며 어머님이 사셨을 때는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일제 말, 그리고 육이오. 그 험한 전쟁까지 겪었습니다. 다 어려웠습니다. 나라가 위태로운 지경에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는지 신경 쓸 여유가 어디 있었겠습니다. 당장 호구지책이 문제였지 어디 아이들보고 웃고 할 형편이나 되었겠습니까.


아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처럼 하루에 한번씩 목욕을 시켜서 깨끗한 피부와 얼굴이 아니라 돌보지 못해 아무렇게나 방치해 둔 까닭에 코에는 누렇게 말라붙은 코딱지, 머리에는 부스럼이 덕지덕지 눌러 붙은 그런 형상들이었지요. 거기다 못 먹어 겨우 뼈만 앙상한 아프리카 어느 빈국의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을 겁니다. 온 몸에 땟국이 꾀죄죄한 그런 아이들, 누가 감히 안아보고 싶었겠습니까?

 
그런 위생상태에서 안 죽고 지금까지 버틴 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위생생활이나 예방이 안 되니 병도 많았습니다.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그저 밤새 앓다가 아침에 세상을 달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 저승으로 간 제 친구도 몇 있습니다. 지금 그 이름은 잊어 가물가물하지만 저승이 좋은 모양입니다.
누구나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말입니다.


어머님,
지금 계시는 곳이 좋으십니까?
여기보다 편하십니까?
아버님은 만나셨습니까?
이제 제 모습도 보기 싫을 정도로 망가진 늙은 영감이 다 되었습니다.

아무리 망가지고 보기 싫어도 아직도 '내 새끼'하면서 귀엽다고 쓰다듬어 주실 겁니까?


문득문득 어머님께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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