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메크 스투파가 왼쪽에 웅장하게 자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주위를 탑돌이 하고 울타리 밖에는 손을 내미는...]
인도에서 가이드를 하려면 최소한 힌두교나 불교의 교리가 어떤 것인지는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 우리 가이드는 젊고 건강하며 불교에 아주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 마음이 곧 부처라는 걸 일상생활 예를 들어 쉽게 설명해 주었다.
처음 현대 아반테 차를 구입을 해 타면 정말 기분이 좋다. 그런데 일년이 지나 소나타 차를 구입하고 나면 그 아반테 차에는 관심이 없어진다. 그것은 아반테 자동차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상 만물은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이것이 바로 화엄경의 핵심사상인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귀에 속속 들어오게 하는 가이드의 설명은 박물관의 조각상들이 그저 예술적인 조각만으로 보이지 않았다. 고개 숙여 기도하고 마음을 가다듬어 두 손을 모으게 만드는 종교적 숭배의 대상으로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아쇼카 석주의 사자상과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부처님 상'이라는 그 부처님이 짓고있는 미소는 아직도 내 기억 한편에 또렷이 낙인 찍혀있다. 정말 아름다운 미소였다.
여행은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강행군이다.
버스를 오래 타고 다녀서 다행이지 만약 걷는 길이 멀었다면 아마 모두가 낙오되고 말았을 것이다.
버스로 달려간 곳은 「초전법륜지(初傳法輪地)」.
…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월 초여드레 날 새벽 보리수나무 아래 금강좌 위에 단정히 앉아 득도를 하시고 법열(法悅)속에 들어 계셨다. 그리고 선정 칠일, 「니르바아나(열반)」에 드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제석과 범천왕이 중생을 위하여 법을 설할 것을 간청하게 된다. 이에 부처님은 승낙하고 육 년 전에 도를 묻던 아라아다. 카알라마 선인을 찾아본다. 그러나 그는 이레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 다음 우드라카. 라아마푸트라 선인을 제도하고자 했으나 그도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육 년 동안 함께 한 코오단냐, 앗사지, 밧디야, 마하아나아마, 밥파. 이렇게 다섯 사람을 찾는다. 그때 이 다섯 사람은 사슴의 동산(鹿野園)에 있었다. 이 다섯 사람을 위해 녹야원에서 부처님은 사성제(四聖諦)를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다섯 사람의 머리를 깎이고 법복을 입히어 사마나(沙門)로 만드셨다. 이것이 상가(僧家)의 비롯이다…….〈우리말 팔만대장경에서〉
[ 뒤로 무라간다 쿠티비할의 건물 흔적들이 보인다. 규모가 대단했을 것이란 상상이 된다... ]
녹야원에는 부처님이 다섯 도반에게 행한 초전법륜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마르간다 쿠비티할(根本香積寺)의 건물 흔적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아쇼카 왕의 돌기둥, 다르마 차크라 스투파(Dharma Chakra Stupa)라 하는 거대한 탑이 있다. 집사람과 함께 거대한 탑을 돌며 조용한 마음이 되길 빌었다. 하지만 울타리 밖에서 새까맣고 움푹 패인 눈으로 우릴 쳐다보며 손가락을 비비는데 세 바퀴를 편한 마음으로 걷기란 정말 힘들었다.
[ 멀리 다메크 스투파를 향해 불경을 읽는 두 사람 사이에 더위에 지친 한 마리 무심한 개가 돌아 누워있다.]
차라리 잔디밭에 앉아 불경을 읽고 있는 인도 사람들 틈에 끼어 부처님 재세 시를 조용히 가름하며 잠시라도 여유를 갖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는 여행자다. 그 작은 여유도 마음에 가질 수는 없었다. 이곳은 어떤가, 저곳은 또 어떤가 궁금증이 한 자리에 가만두지를 않았다. 결국 돌고 돌아 나온 것이 처음 설명을 듣던 그 보리수 아래였다. 우리나라의 잔디와는 달랐지만 갸냘픈 잎사귀치고는 강해서 모두 밟고 있어도 아무 제지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바람이 부는 그 나무 아래서 오히려 약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버스를 타려고 길거리로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장사치들, 그리고 훈련된(?) 어린 거지들, 그 보호자들. 귀찮다 성가시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고 그저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캄보디아를 갔을 때 가이드가 이럴 때 선글라스를 끼고 눈을 마주치지 마라고 했다. 얼른 생각이 나서 선글라스를 꺼내 썼다. 다소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저 버스로 오는 십여 미터를 그렇게 당하니 나중에는 짜증이 나다가 좀 더 지나니 버릇처럼 돼 버렸다. 이래서 사람의 감정은 무지러지고 둔해 지는가 보다.
[ 물라간타 꾸티 사원의 입구, 인도에도 이런 깨끗한 절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정원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
버스로 오 분 거리도 안 되는 곳에 물라간타 꾸티 불교 사원이 있었다. 어느 사원이나 마찬가지로 신발을 벗고 참배를 하고 둘러보았다. 규모는 작았지만 아주 깔끔하고 여느 인도의 사원보다 더 잘 갖춰진 것 같았다. 특히 부처님 생을 벽화로 잘 그려져 있어 부처님 일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가이드 말로는 여기에는 많은 빈민들이 와서 식사를 무료로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보니 더 아름답게 보였다. 집사람과 나는 삼배를 하고 일 달러를 불전함에 넣었다.
아침에 네팔을 출발, 인도의 바라나시에 도착.
하루만에 정말 너무 많은 것을 보았다. 이렇게 주마간산격으로 보다가는 어디를 어떻게 다녀왔는지 조차 모를 일이다. 사건이 터져야 한다. 크게 다치거나 중요한 걸 잃어버리는 일이 아닌 사소한 말썽 말이다. 그래야 나쁜 기억 속에 굵은 획을 긋게 되는 추억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항상 기대는 기대로 끝난다.
아무런 말썽 없이 바라나시의 조용한 하루가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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