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리 영양 군청과 영양이 산으로 둘러싸인 현실이 보이고 식당 앞에는 예의 그 스쿠터가 대기하고 있다... ]
민물고기를 삶아 뼈를 추리고 갖은 양념을 넣어 매콤하게 끓이다가 면을 넣어 소위 어탕국수란 것을 만든다. 충청도 옥천군 청산면에 친구가 있어서 삼십 여 년 전에 맛을 보고 난 뒤로는 가끔 생각이 나서 그 근처를 지날 때 일부러 들러 사먹곤 하였다. 미꾸라지를 쓴 경상도 지방의 멀건 추어탕과 달리 풍부한 민물고기를 이용하여 국물이 진하며 대신 나물은 적게 들어있었다.
그런데 둘째가 경북 오지의 영양군청에 취직을 해 딸을 보러 몇 번 들락거리다가 우연히 군청 앞 조그만 식당, '돌하루방'에서 바로 그 충청도의 어탕을 만나게 되었다.
꼭 집어 말하면 어탕과는 다르다. 다만 그 맛이 비슷하단 이야기다. 이름도 추어탕이라고 했다. 그런데 내 입맛에 맞고 또 걸쭉하게 끓여서 먹고 나면 마치 몸보신한 기분이 들어 자주 찾게 되었다. 물론 딸네 집에 가는 경우가 그리 흔치 않아서 어쩌다가 찾아갔지만 어느새 단골이 되고 주인과는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그 음식점 주인이 체구는 자그마한데도 불구하고 혼자 작은 스쿠터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배달도 하고 찾아오는 많은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것이 부지런하면서도 무척 바빠 보였다.
한번은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나서 밥을 먹으러 찾아갔다. 식당은 엄청난 파도가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빈 그릇들이 흩어져 있었고 조용한데 텅 빈 방에는 여러 음식 냄새만 뒤섞여 한꺼번에 와락 달려들었다.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기다려야 하나 망설이며 한참을 주저하고 있는데 마침 주인 아줌마가 배달을 마치고 돌아왔다.
매번 먹던 추어탕을 주문하고 '혼자서 이렇게 바빠 어쩌나?'부터 시작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국 어떻게 상호가 '돌하루방'인가? 또 이런 추어탕은 어찌 끓이게 되었느냐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결국 아줌마의 내력이 다 나오게 되었다.
주인 아줌마는 음식점 상호에서 보듯 고향이 제주도라 했다. 어찌하다가 이런 산골에 시집을 오고 그럭저럭 살다보니 삶이 이렇게 되었었단다.
"친정에 한번 가려면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대여섯 번을 갈아타야 합니다. 옛날에 예천에 비행장이 있을 때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요즘은 대구까지 가서 제주도 가는 비행기를 타야하거든요."
그럴 것이다. 우선 안동까지 버스로 가야하고 안동에서 또 대구, 그리고 또 시내버스로 대구비행장을 가야한다. 그리고 제주에 도착하면 또 버스를 타야 친정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요즘 흔히 이야기하는 '다문화가정' 어쩌고 하며 동남아의 여인들이 우리나라에 시집와서 친정 한번 가려면 어렵게 고생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경상도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생선의 진한 국물에 부지런한 제주도 여인의 손맛이 담긴 어탕,
결국 그 희한한 여인의 삶이 진하게 우러난 운명적인 국물이 바로 이 추어탕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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