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외씨 버선길 - 영양(英陽) 』

일흔너머 2011. 10. 5. 10:42

 

 

            [ 대티골 입구에 외씨 버선길의 조형물(버선 모양)이 제법 웅장하게 세워져 있습니다. 앞에는 동네 이장댁이 있고...! ]

             

꼬불꼬불한 신작로를 차들이 쉽게 다니도록 똑바로 내고 거기다가 더 넓게 고쳐서 시원한 고속도로를 만들면 지난날 사용하던 길은 그만 팽개쳐버린다. 포장도 하지 않아서 아무짝에도 쓸모 없을 줄 알았던 그 방치된 신작로가 다듬어져 산책로 「외씨 버선길」흔히 요즘 유행하는 둘레길이 된 것이다.

 

하필 이름을 '외씨 버선길'이라 한 것은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 마을에서 태어난 시인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에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 보선이여!'란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우리나라 여인의 작고 아름다운 발을 감싼 버선이 마치 참외 씨처럼 앙증스레 곱다는 의미지만 여기서는 춤을 추는 여승의 버선이 보일 듯 말 듯한 것처럼 숲에 가린 산책길이 숨었다가 나타나고 나타났다가는 숨는 그런 의미로 붙여진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외씨 버선길은 경북 북부의 오지 봉화, 영양, 청송 소위 말하는 BYC에다가 강원도 영월까지 합쳐서 BY2C 지역에 위치하니 감히 공기가 어떻다고 그 맑음을 논하면 안 된다. 우리나라 아니 세상에 이보다 더 청정한 지역은 없다. 그래서 이 외씨 버선길에서는 그저 오래 머무르면 최고다. 거기다가 대략 백 년은 넘었음직한 장송들이 열병식을 하듯 좌우로 빽빽하게 둘러있는 곳을 걸으니 산림욕이 저절로 되어 건강에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 산책길에 이렇게 소나무가 울창하게 서있는 길은 정말 드물다... 그저 오래 있으면 오래 있을수록 좋은 곳..]

 

지난날 일제가 이 지역의 광물자원과 목재들을 수탈하기 위하여 만든 신작로, 지금은 번듯한 31번 국도가 따로 있지만 그 옛날의 신작로가 '외씨 버선길'로 단장된 것이다. 옛날 그대로 노폭도 버스 한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고 비포장이다. 하지만 산책길로는 너무 넓어서 서너 명이 나란히 걸으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그것도 거리가 왕복 칠 킬로미터가 넘는다. 이만하면 사랑하는 이와 정담을 나누는 데 충분하지 않겠는가.

 

             [중간 휴식 지점에는 일 년후 배달되는 느림보 편지를 넣도록 우체통과 벤치가 있다... ]

 

요즘 우리나라 행정기관은 주민들을 위해 정말 많은 일을 한다. 외씨 버선길에도 안내판은 물론 곳곳에 산책하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시설을 해 두었다. 심지어 산책길 중간에 작은 텐트를 치고 그 안에는 차와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준비를 해 두었다.

 

            [ 입구에는 길 안내판이 나무로 정겹게 새겨져 있다...이런 안내판이 없어도 외길이라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하지만 아무도 그 라면과 휴대용 가스버너 그리고 포트에 손대지 않은 것으로 봐서 국민들의 수준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우리가 못 살 때는 뭐든지 가만 두지 않았다. 쓸만한 것은 다 쓸어 갔다. 지금은 어딜 가나 느낀다. 자기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손대지 않는다.

 

            [오른쪽의 낡은 안내판이 이곳이 그 옛날 국도임을 잘 알려주고 있다..그 아래 작은 돌탑이 제법 귀엽다...]

 

즐거운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날이 더 건조하기 전에 산에 마련된 휴대용 가스버너를 치워야 산불이 나지 않을 것인데 하는 것과 저렇게 잘 마련하고 관리하는 데 든 비용만큼 찾아오는 관광객이 지역주민들에게 경제적인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저 자기들 좋아서 찾아와 돌아다니며 소란 피우고 쓰레기나 남기고 가버리면 조용히 농사짓는 지역주민은 무슨 죄인가.

 

대구 금호강가의 우리도 많이 당해 봐서 잘 안다. 낚시꾼들이 떼를 지어 찾아와 밤을 새며 놀다가 떠나가면 남는 건 온갖 쓰레기뿐이다. 그래서 자치단체가 앞장서 입구나 휴식 공간에 자판기라도 설치하고 그 이익금을 관리비용에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