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산동성 기행-대륙의 가장자리 』

일흔너머 2008. 4. 6. 09:02

 

[ 사진은 연대공항이며 지금은 시집간 둘째이다. ]

 

 

북한에서 귀순한 병사의 나이가 20세를 넘으면 남한에서 자유를 찾은 기쁨도 잠시고 대체로 오 년 이내에 사망한단다. 정보장교로 근무할 때 포심장교(포로심문장교)교육에서 들은 이야긴데 아주 어린 나이에 남한으로 오면 그런 대로 적응을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민물에 사는 고기를 바다에 넣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단다. 모든 자유가 억눌린 통제 사회에서 살다가 너무 자유로운 남한에서는 어쩔 줄 몰라 퍼덕대다가 그만 명을 단축하고 만다는 것이다.

 

대구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가 산동 반도의 가장자리에 위치한 옌타이(연대)에 내리는 순간 '내가 대륙을 밟는구나'하는 감동을 느끼며 민물고기를 드넓은 바다에 던져놓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불과 한 시간 정도의 거리를 비행한 가까운 곳인데도 내리는 빗줄기에 중국의 향(香)이 배어 있었다. 실제로 우리 나라에서 가장 가까운 이곳은 고요한 새벽에는 우리 나라에서 우는 닭 울음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우중충한 조명아래서 크다란 글라스에 이름 모를 찻잎을 띄워놓고 마음대로 담배를 피우며(아직까지 중국에서는 끽연자의 권리가 우세하다. 에어컨이 돌아가도 문을 꼭꼭 닫아 놓고 태연히 담배를 피운다. 밥을 한입으로 먹으며 담배를 피우는 경우도 볼 수 있었다.)카드게임에 빠져있는 현지인 들을 대하는 것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렇게 고개 꽂꽂이 들고 중국 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무한한 영광이다. 우리 나라의 과거 역사에 어디 감히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외교를 한 적이 있었는가. 그리고 관광차 이렇게 무단히 올 수 있었던가. 그리고 말 그대로 칙사 대접을 받으며 우리 돈으로 결재(?)하고 그것도 용돈정도로 며칠을 둘러볼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의 국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이다.

 

연대-산동반도의 중부, 황해와 발해 기슭에 위치한 산과 바다를 낀 수려한 풍경의 도시로 인간 세상에 내려준 선경(仙境)이라 불리는 곳이다. 특히 아시아 유일의 국제 포도 및 포도주 도시이며 중국에서 첫 번째로 비준한 연해 개방도시의 하나다. 그래서인지 우리 나라 기업인들이 많이 보이고 거리에서 한글 간판도 가끔 볼 수 있었다.

밤늦게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술 취한 젊은 남녀를 만났는데 아가씨는 겨우 우리 나라 여고생 정도로 보여서 개방이 꼭 좋다고 만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대체로 중국을 여행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의 6, 70년대 정도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잘 닦여진 고속도로와 넓고 풍부한 자원을 보고 우리와 멀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현재 우리들이 너무 빨리 성취감에 빠진 것은 아닌지, 곧 우리를 앞질러 역사를 돌려놓을 것은 아닌지 걱정되었다.

세계 인구의 삼분의 일이 살아간다는 나라에서 우리 나라에서 보는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모임이라든지 자동차의 정체 같은 것은 보지 못했다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이번 여행에서 진정 보고자 했던 것은 두 가진데 하나는 공자(孔子)의 사당과 묘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태산(泰山)이다. 다음에 이들을 자세히 소개하겠지만 같이 간 어느 선생님의 표현을 빌면,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 황하강변에서 말을 달려 보기도 하고, 태산 기슭에 앉아 고 스톱도 쳐봤으니 더 이상 뭘 바라겠나?"

말인 즉 그렇다.

언제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 중국-흔히 말하는 대국을 이렇게 어깨 펴고 활보한 적이 있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