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금붕어 』--- (1)

일흔너머 2008. 4. 7. 08:35

 

가로 백 이십, 세로 삼십. 거기다가 높이가 칠십 센티미터가 충실한 커다란 어항에 달랑 금붕어 두 마리만 비실대는 것이 하도 서글퍼서 퇴근길에 가게에 들러 그 중 가장 활발해 보이는 잉어새끼 한 마리를 사다가 넣었다. 그런데 이 녀석, 들어오자마자 수족관이 비좁다는 듯 위아래 한 바퀴를 휙 돌더니만 다짜고짜 금붕어에게 달려가서는 입을 쪽 맞추는 것이었다. 잉어 새끼가 하는 짓이 우습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여 창호는 뿌듯한 마음으로 저녁밥을 먹으면서도 어항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래, 이건 내가 해도 참 잘했어. 일찌감치 왜 이런 생각을 못했지…….'
잉어가 또 다른 금붕어의 눈에 입맞추는 것을 보고 내심 스스로를 칭찬하며 만족해 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관심을 보이고 사랑해 주는 짝이 있어야 하는 거야. 저 봐, 얼마나 보기가 좋아.'
평소 저녁밥을 먹고 나면 TV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창호였다. 그런데 오늘은 새로 사온 잉어가 하는 짓거리를 보면서 저녁 내내 어항만 들여다보다 잠이 들었다.


그러나 창호가 예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일이 일어난 것은 정작 다음날 아침이었다. 아니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또 밤새 어항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침해가 환하게 밝아 잠에서 깨어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평소처럼 잠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던 창호는 어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둠 속에서 일어난 살육의 현장은 차마 눈뜨고 못 볼 참상이었다. 금붕어가 그저 조용히 수족관 가장자리를 헤엄치며 평화롭게 놀던 시절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새로 사온 잉어와 어울려 밤새 화끈한 사랑을 나누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부옇게 흐린 물 위에 배를 뒤집은 금붕어가 산소 거품에 엉겨 두둥실 떠 있었다. 그리고 가장자리에는 뻔질나게 쫓아와서 눈에다 입을 맞추는 잉어를 피해 한쪽 눈이 빠진 채 비틀거리며 달아나는 참혹한 다른 한 마리 금붕어가 있을 뿐이었다. 불쌍하게도 아직 숨이 붙어있는 금붕어는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물 속을 헤집고 창호가 사랑이라 여겼던 잉어의 그 입맞춤을 피해 다니느라 발버둥치고 있었다. 창호는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어젯밤 잘한 일이라며 혼자 가슴 뿌듯해 하던 일이 오늘 아침에는 참담한 결과가 되어 결국 이 지경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기가 막혔다. 며칠이 지난 후에 박 선생을 통해 알았지만 잉어가 금붕어의 눈에다 입을 맞추었던 것은 창호가 짐작했던 애정표현이 아니라 먹이를 먹을 때 씹지 않고 빨아먹는 물고기 특유의 습성이었던 것이다.


창호가 처음 박 선생을 만난 것은 금붕어가 죽고 이틀이 지나서였다. 살아있는 잉어뿐 아니라 어항조차 보기 싫어 싹 치워버린 날, 종일 멀쩡하던 날씨가 퇴근 무렵 갑자기 비가 내렸다. 우산도 받지 않고 자주 가는 술집으로 냅다 뛰었다. 평소 명품, 사치, 뭐 이런 것을 싫어하는 창호였다. 그래서 그런지 막걸리를 좋아했다. 젊어서 자주 마시던 탓도 있었지만 효소가 살아있다는 이유에서다. 퇴근길 허름한 식당을 찾아 혼자 몇 대포 걸치고 집으로 가는 것이 요즘은 거의 일과처럼 되었다.
식당이란 대체로 그 음식의 부류에 따라 찾는 손님과 분위기가 정해진다. 말 그대로 탁주-막걸리는 그저 가진 것 없고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 탓으로 돈과 여자로 설쳐대는 술집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한마디로 단순하고 순박한 사회의 약자들이 모이는 곳이란 말이다.


선술집 천장에는 손님들을 위해 낡은 TV를 달아 놓았다. 아나운서의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저녁뉴스를 하는지 청계천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가도로를 부수고 복원한다나 뭐 그런 이야기다. 금붕어 사건 이후 창호는 안타까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불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청계천을 복원한다면 '아, 복원하는구나' 그렇게 알면 되는데도 꼭 '저 녀석들이 또 속이는구나. 만들 때는 무슨 심사고 부숴야 한달 때는 대체 뭔 심산고? 하긴 양심도 없는 녀석이지. 제 놈이 만들고 제 놈이 부수자니까.' 하고 불만을 터트리는 것이다. 물론 남에게 불평을 하는 만큼 창호 자신에게 철저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 성격 어디 가나. 자기 손으로 작은 미물 하나 죽여도 그 가책 때문에 오래도록 안타까워하는 것이었다.
"서울은 돈이 남아서 탈이야. 멀쩡한 걸 가지고……"
그때 옆자리에 있던 사내는 창호의 말을 잽싸게 맞받았다.
"서울에 돈 없으면 버얼-써 나라 망하게?"
창호는 옆자리에서 빈정대듯 내지르는 사내의 공격에 깜짝 놀랐다. 사실은 사내가 하는 말에 놀란 것보다 버릇처럼 혼자거니 하다가 바로 옆에 사내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놀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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