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삶의 향기 』--- (3)

일흔너머 2008. 4. 10. 09:39

 

 
거푸집을 만들어 콘크리트를 비벼 넣고 양생하는 기간이 한 층에 한달 정도씩 걸렸다. 그러니까 터파기 공사부터 시작하여 오층이 거의 끝날 때까지는 육 개월하고 보름이 걸렸다. 살다가 재수 없으려니까 하필 그때 나라가 뒤집힌 것이다.

우리 나라 경제가 IMF체제에 들어간 것이다. 김씨는 그 때 일만 생각하면 지금도 답답하고 기가 막힌단다.

그때는 정말로 막막했다. 임대를 서로 들어오겠다고 부탁까지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붙잡고 권해도 머리를 가로 흔들어댔으니 말이다. 임대고 나발이고 김씨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엎친 데 덮친다고 은행의 이율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공장에다 집을 다시 짓는 바람에 수입이 없어진 김씨의 처지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늘어나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죽음을 생각했단다. 철부지 자식들만 없었더라도 아마 죽었을 것이라 했다.
"까짓 어른이야 살만큼 살았다 하자. 이제 세상 보려고 태어난 저것들이 뭔 죄가 있다고……."
신파극같이 끌어안고 한바탕 울었단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어른들이 우는 바람에 아이들까지 악머구리같이 울어댔고……. 나는 김씨가 말하는 그 상황이 이해가 되었다.

 
세상 정이란 것이 묘해서 먹고 살만 하면 가난하고 못살던 때보다 더 헐뜯고 난리를 치고 다투지만 궁핍하면 오히려 서로 안고 위로해 주며 보듬켜 안아주는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다른 모든 조건들을 용서하고 가난을 우선적으로 탈피하도록 단합하는 힘이 생긴다.

김씨네도 그랬다. 온 가족이 모여 엄청난 결단을 내렸다. 다달이 높은 이자를 내야하는 부담을 우선 벗어나기 위해서 당장 은행의 대출금을 갚는 것이었다. 결국 헐값에 어쩔 수 없이 집을 팔았다. 김씨 팔자에 그런 호강이 없었는지 처음으로 지은 새집에서 따뜻하게 이불 덮고 잠 한번 자보지 못한 채 팔아버린 것이다. 결국 그 집을 잃고서야 은행의 족쇄에서 풀려날 수 있었단다.

 

하지만 이제 먹고사는 것이 문제였다. 당장 호구지책을 찾아 나서야할 판이지만 경기가 불황일 때 되는 장사가 없었다. 김씨 아내는 자기가 힘들어도 발벗고 나설 테니 먹는 장사를 하자고 했다. 은행에 갚고 남는 자투리 돈으로 김씨가 팔아치운 바로 그 집 일층에 전세를 들었다. 자기가 살던 집에 전세를 들다니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때는 나라꼴이나 김씨의 집안 꼴이나 말이 아니었다. 뉴스에는 매일 IMF에 대해 보도하고 가방을 든 서양인들이 떼거리로 공항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비췄다.

 

평소 아무 관심도 없던 환율이지만 하도 많은 보도를 해대니 '아, 저렇게 중요하구나.' 하며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달러나 사 묻어 놓을 걸."
하루에도 몇 십 원씩 오르던 환율은 칠백 오십 원 대에서 천 팔백 원을 오락가락 하였다. '소로스'라는 미국놈 장난이라는 사람도 있고 나랏님이 멍청해서 그렇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거나 시장통 분위기가 꽁꽁 얼어붙어 아무 것도 되는 것이 없었다.

 

 처음 불고기집을 개업했을 때, 김씨 생각에는 일이 좀 험하고 남들 보기가 천해도 그게 무어 대순가?

금방 돈 벌면 집을 다시 사고 살림이 일어나면 집어치우면 될 것 아닌가했단다.

남들도 고기집 해서 돈 많이 버는 경우를 봤고 또 그렇게 될 것이라는 희망으로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역시 김씨 뜻대로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단다. 경험이 없는 데다가 수십 년 공장에서 얻어진 습관은 어쩔 수 없었다. 하나 받으면 하나 주고 둘 받으면 둘을 주던 공장 거래에 길들여진 김씨는 인심 쓸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다음을 위해 오늘 손해를 본다며 맛도 문제지만 돈에 비해 양도 마음껏 베풀었어야 했다. '이곳 아니면 어디 밥 먹을 데가 없는 줄 아는감'하고 한번 돌아선 손님은 다시 오지 않았다.

 

 결국 두 달만에 김씨는 불고기집을 그만 두어야 했다. 도저히 손익을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일당에다가 재료비를 어디서 뽑을 것인가. 손님들이 줄을 서도 될까 말까한 일인데 이건 영 아니었다. 김씨의 탓도 탓이려니와 때가 때인 만큼 경기가 워낙 없었다. 결국 시설비만 날린 채 단칸 셋방을 얻어 쫓겨나다시피 했단다. 그 날 김씨는 태어나 처음으로 돈을 원망하며 울었단다. 김씨 스스로 벌어 장만한 집이라면 오히려 그처럼 섧지는 않았을 것이다.

 
"못난 놈,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더 크게 넓히지는 못 하더라도 그래,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린가. 아이고 이 못난 자식……."
"그래, 정말 못난 놈이다. 요즘 사나이들 다한다는 계집질을 해서 재산을 탕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름에 빠진 것도 아니고…… 그저 멀쩡한 집 한 채 짓다가 이 꼴이 뭐란 말인가?"


도대체 자신이 뭔 법을 어기고 무슨 나쁜 짓을 해서 벌을 받는지 김씨 스스로 생각해도 억울하더라는 것이다.

인적이 드문 곳에 차를 몰고 가서 문을 잠그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그냥 들이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취중에 혼자 울었단다. 통곡을 했단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젠장, 자동차가 이런 편리한 때도 있구나. 혼자 난리 굿을 쳐도 다른 사람은 아무도 모를 판이니……."


취중에 실컷 울다가 엉뚱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그 뒤로 울적한 일이 있으면 차안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버릇이 생겼다.

나중에 후회를 했지만 차라리 이때 마음 다잡아먹고,
"그래, 가난하고 어렵게 살아가는 것이 내 운명이라면 아무리 험하고 어려워도 그 길을 가는 수밖에……."
하며 속 편하게 바로 건축 노동판에 막벌이꾼으로 나섰더라면 운명의 신이 미리 짜놓은 다음 단계는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것이 어디 그런가.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겪을 만큼은 겪어야 깨우치는 것이 우리들 삶이다. 사람에겐 늘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희망을 안고 있는 사람에게는 욕심이 곁에서 부채질을 해댄다. 나도 남들처럼 하면 될 것이란 희망과 조금 더 노력했었다면 하는 후회 섞인 욕심이 사람의 운명을 쉽게 나락에 떨어지도록 가만 두지는 않는다. 운명의 신은 잔인하게도 인간들이 험준한 비탈길을 따라 고통의 과정을 야금야금 밟도록 해놓고 깔깔대며 즐기는 편이다. 시련을 겪으면서 강물 속의 돌이 닳듯 차츰차츰 무지러지는 아픈 과정을 통과의례처럼 겪도록 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슬픔도 단숨에 삭아 가라앉는 경우는 없다. 세월이 약이라는 말처럼 가슴에 묻어두고 조금씩 조금씩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삭여야한다. 처음에는 자신의 잘못을 부정도 하고 주위에서 그 이유를 끌어다가 핑계도 대고 변명도 하다가 한참 시간이 흐르면 분이 가라앉고 그때야 비로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평범한 사람들의 생리다. 김씨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그 정도가 혹독하고 시련의 과정이 너무 길었다는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김씨에게는 어려울 때 서로 의논하고 가까이 지내던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가 부끄럽고 민망하여 만나지 않게 되자 차츰 멀어져갔단다. 그리고 김씨 스스로가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다. 혹시 누구 아는 사람을 만나지나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아예 대중교통까지도 멀리하게 되었단다. 낡고 험했지만 자신의 차를 고집하는 이유가 여기 있었다. 아무도 없는 자신만의 공간, 김씨는 자동차를 타고 달리면 비로소 자유를 얻는 기분이 들었단다. 어두워지면 죽고싶은 심정에 혼자 몸부림치다가 운전대를 잡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화근이었다. 가장 안정된 상태에서 해도 자칫 잘못하면 사고를 내는 것이 운전인데 정신적으로 불만이 가득할 때 운전대를 잡았으니 문제였다. 차량이 뜸해진 늦은 밤, 그 날도 아무 생각 없이 멍한 상태로 달렸다. 뒤에서 빨리 가자고 서두르는 차도 없을 뿐더러 김씨 자신도 바쁘게 가야할 일도 없었다.


도시의 외곽으로 난 길들은 하나같이 잘 다듬어져 중앙분리대에다 가로수하며 화단까지 깨끗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가로수가 어둔 그림자를 안고 김씨의 차가 내뿜는 헤드라이트 불빛에 규칙적 리듬을 타고 다가왔다가 사라져갔다. 똑바로 뚫린 아스팔트길이 김씨에게는 곧장 천국으로 가는 지름길처럼 느껴졌단다. 언젠가 들었던 유행가처럼 이대로 영원히 이 길을 따라 마냥 갔으면 좋을 것 같았단다. 낡긴 했지만 이 차와 함께 영원히 저 하늘 끝까지 말이다.


그때였다.

섬뜩한 그림자가 중앙 화단을 넘어 차선으로 달려들었다. 반사적으로 김씨가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지만 무서운 충격과 함께 검은 물체가 튀겨 나갔다.

그야말로 순간이었단다.

모든 것이 산산이 깨지는 운명의 순간 말이다.
교통사고란 운전자가 보험에 들어있고 피해 당사자와 합의만 이뤄지면 일사천리로 해결이 쉽게 된다. 운이 없으려니까 그러는지 김씨의 경우는 달랐다. 피해자가 무연고 행려(行旅)자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합의 볼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겠다고 팽개쳐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이제는 보호자가 너무 많아서 탈이었다. 보상금이 탐나서 나타난 보호자라는 사람은 무려 아홉이나 되었다. 평소 나 몰라라 팽개쳤지만 사람이 죽자 보상금이 탐난 나머지 보리쌀소쿠리에 쥐 달려들듯 했단다. 사돈의 팔촌까지 나타나 누구와 합의를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아무 진전도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채 유치장에서 여덟 달 이상을 보냈다.

(2003. 08. 14.)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  (0) 2008.04.12
『 삶의 향기 』--- (4)  (0) 2008.04.10
『 삶의 향기 』--- (2)  (0) 2008.04.08
『 삶의 향기 』--- (1)  (0) 2008.04.08
『 금붕어 』--- (3)  (0) 2008.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