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에 청계천을 복개하고 십 년 후 '고가도로'가 만들어진 후, 그 일대에 건물들이 세워지자 힘없고 꾀 많은 인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지금은 우수한 한민족의 두뇌를 자랑이라도 하듯 어지간한 첨단과학적인 과제들조차 안 풀리는 것이 없다고 할 만큼 인재들이 운집한 것이다. 세계적 첨단 신기술들이 어린애 장난같이 여겨지는 곳이 바로 이 청계천일대의 상가라고도 한다.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면 핵폭탄도 쉽게 만들 수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란다. 그래서 IMF체제 때처럼 우쭐해 하던 우리를 순식간에 길들이고 그 바람에 대덕단지의 많은 인재들을 뿔뿔이 흩어버렸듯, 상가지대를 헐어 우리의 우수한 두뇌들을 흩어버리려는 수작이란 말도 세간에 떠도는 것이다. 여기까지 박 선생 말을 주섬주섬 듣고있던 창호는 지난 일이 번개같이 스치는 것이었다.
"대구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이 있었지요."
갓 결혼하고 신혼의 단꿈에 젖어있던 때라 어디 출장 가는 것을 꺼렸다. 그런데 여름방학을 맞아 교사들 연수가 줄지어 나왔다. 누구 대신 갈 사람도 없었거니와 안 가면 어차피 겨울방학에 또 나올 것이라서 참석한 것이 [중등 교사 인구 교육]이었다. 말이 인구 교육이지 이건 [산아 제한 교육]이었다. 처음에 그 유명한 '맬더스'의 인구론부터 시작하여 결론은 아이를 적게 낳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그때는 인구가 국력인지도 모르고 거저 원수같이 여겨져서 당연히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이 끝나는 날이었다.
"유네스코에서 여러 선생님들께 인구교육강사로 위탁하고 강사료를 지금 지급하는 것입니다. 학교로 돌아가시면 주위 여러분들께 취지를……."
창호는 연수를 마치고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돈까지 받았으니 기분이 무척 들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하릴없이 생각에 잠겨 차창 밖을 내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시골 촌뜨기를 불러내어 출장비를 받았는데 왜 또 많은 돈을 까닭도 없이 준단 말인가? 어차피 학교로 돌아가서 전달연수를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강사료라니 이건 평소에 없던 희한한 일이었다. 이건 우리 나라의 엘리트들에게 인구교육이라는 미명으로 [산아제한] 교육을 함으로서 우등인자를 줄이려는 의도로 밖에 볼 수 없었다. 결국 우리 민족을 쇠퇴시켜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겨우 보호나 받는 그런 류로 만들려는 계획 말이다. 자신들을 추월할 다른 민족들을 계속 종속(從屬)시키려는 계산된 행동인 것이다. 창호는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에게 그들을 말살시키려고 감기 약을 주면서 피임약을 함께 준 과거 백인들의 전력(前歷)이 떠올랐다. 그리고 강사료라는 핑계로 돈을 준 그들……유네스코라는 커다란 공룡의 뒤에 숨어 일을 꾸미는 보이지 않는 큰손, 바로 그들…….
창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 선생은 동의한다는 뜻인지 아니면 상가 철거 문제로 맥이 풀린 탓인지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리고 남의 말하듯,
"그들은 그것을 개발이나 사랑이란 미명(美名)으로 덮고 아름답게 치장한 큰손으로 대중의 눈을 가립니다. 그게 그들 특유의 습성이고 기술입니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흐른 후에야 모두들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습니다. 가해자에 비해 피해자는 거의 치명적이니까요."
박 선생이 띄엄띄엄 대수롭잖게 흘리는 말을 무심코 듣고있던 창호는 커다란 방망이로 세차게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아득하였다.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 뜨고 비벼도 작은 방울들이 시야를 가렸다. 주위의 소음이 멀어지며 점점 더 어지러웠다. 희뿌연 자동차 매연으로 얼룩진 광장은 탁한 물로 가득한 어항처럼 보였다. 더 이상 뒷걸음질쳐 피할 곳 없이 갇혀진 장방형의 어항, 세상 그 어느 누구로부터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깜깜한 어둠이 밤새 덮여 있었을 어항. 그리고 그 속에는 매춘보다 더 징그러운 잉어의 입맞춤을 피해 눈이 빠진 채 오로지 삶을 도모하기 위해 도망 다녀야 했던 금붕어가 있었다. 동료가 눈앞에서 유린당하는 것을 맥놓고 거저 바라보아야만했던…….
잉어새끼 한 마리를 사다 넣고 가슴 뿌듯했던 그 날의 감동이 부메랑처럼 한낮의 뜨거운 햇빛이 되어 창호의 가슴을 짓눌러 왔다.
박 선생이 옆에 있는 것도 잊은 채 악을 써 비명처럼 고함을 질렀다.
"나는 모른다. 금붕어야! 잉어 그놈이 혼자 한 짓이야."
숨이 점점 더 막혀왔다.
갑자기 목구멍에서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었다.
토(吐)하고 싶었다.
창호는 마시던 한 모금 맥주를 삼키지도 내뱉지도 못한 채 거의 반사적으로 벌떡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2003.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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