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삶의 향기 』--- (2)

일흔너머 2008. 4. 8. 09:39

 

 


김씨를 처음 만난 것은 삼 년 전 무등산지구 아파트 공사장이었다. 나나 김씨는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당 삼만 팔천 원의 이름 그대로 공사장의 잡부였다. 물론 삼만 팔천 원을 노임으로 다 가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속한 용역회사의 관리비로 삼천 원, 또 이런 저런 명목으로 이삼천 원을 떼고 하루 삼만 원 벌이였다. 그런 만큼 삼만 원 어치의 일을 책임지고  열심히 해야하는 것이다. 물론 건축노동자의 자산인 몸을 최대한 아끼기 위하여 감독하는 '십장'이란 사람이 보지 않을 때는 어슬렁어슬렁 소위 말하는 '노가다'의 자세로 놀면서 말이다. 어찌어찌 시간이 지나면 내 인생의 하루가 지나고 그 대가로 삼만 원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삼만 원으로 먹고 자고 시간을 죽이는 것이 '노가다의 생존'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그렇듯, 어쩌다 가슴을 열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메마른 생존도 향기 나는 즐거운 생활이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내가 김씨와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한마디로 뿌듯한 반려자를 얻은 것이었다. 그리고 김씨도 대여섯 살 손아래 내가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그를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항상 친형님처럼 모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처음, 할퀴고 뜯긴 많은 삶의 상처를 안고 만났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고 덮어주며 스스로 달래고 싶었는지 모른다. 최소한 자신을 알아달라고 넋두리라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이것이 낯선 타향에서 그것도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끼리  가깝게 만든 이유였을 것이다. 실제로 시간만 나면 둘은 세상 살아온 지난날의 이야기에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잘 되면 제 탓이고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이 있듯이 김씨가 그랬다. 도대체 자기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를 않았다. 세상 모든 이들이 그렇겠지만 어딘가 핑계를 대는 성격이었다.
"여편네가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걸……."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지만 아내의 잘못이 시발점이라고 김씨는 생각하고 있었다. 미결수유치장에 있을 때도 그랬고, 이곳 광주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도 아내를 탓했다.


[노가다]-건설공사장에서 날품팔이 막노동꾼을 일컫는 일본말이다. 날품을 판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힘이 남달리 센 것도 아니라 그저 못 죽어 사는 그런 부류들을 말한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쉽게 죽을 수만 있었다면 벌써 몇 번을 죽었을 것이다. TV에는 연일 자살사건을 보도하지만 그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도 아니었다.
나 하나 콱 죽어버리면 그만이라고 하지만 살다보면 누군 뭐 그런 막다른 골목에 몰린 적이 한두 번인가. 김씨 얘기로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정말 죽어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열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죽으려고 하면 쉽지가 않았단다.

 
"옆집에서는 삼층을 지으려고 설계를 냈는데 이왕이면 오층으로 하라고 은행에서 권하더래요. 여자 말로는 뭐 그래야 땅값이 분산되고 임대료도 낮아져서 세놓기가 쉽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 여편네 아는 것도 많아……."
밥상머리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그냥 듣기나 하라는 듯 지나가는 말처럼 뱉었다.
옆집에서 하는 일이 못마땅하단 말인지 옆집 여편네가 부럽다는 말인지 밑도 끝도 없이 들이미는 것이다. 보통 여자들이 그렇지만 책임질 일이 일어나면 그때 가서는 내가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언제든지 발을 빼겠다는 의미다. 그리고는 김씨의 혼을 빼버릴 듯이 쫑알대는 것이다.


대대로 물려받아 오밀조밀 모여 살던 초가집들이 도시의 발전과 함께 차츰 개발될 때 일이다. 다 같은 조건이었고 별난 재주들이 없는 이웃들이었는데 무슨 영문인지 어느 날 갑자기 옆집에서 빌딩을 짓는다고 했다. 김씨 아내는 하루가 멀다하고 낱낱이 그 정황을 알아왔다. 그리고 나날이 발전하는 옆집에 비해 묵묵히 그날그날 살아가는 김씨가 무능하다고 핀잔하듯 공사 진척 상황을 이야기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당신은 뭐 하느냐는 식으로 일부러 김씨의 턱밑에서 부아를 돋우는 아내의 진정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김씨는 이 모든 걸 꾹꾹 눌러 참으며 대수롭잖게 여겼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이웃집의 공사가 시작되어 차츰 김씨네 초가가 양쪽에서 올라가는 빌딩 때문에 초라하게 묻혀 들어갈 때, 아내의 넋두리를 떠나 김씨 자신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기 시작했다.

 
"똑같은 처지에 나만 이렇게……. 저 녀석들이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나만 바보로 보일 것이다. 까짓 밑져야 본전인데 옆집처럼 은행에 한번 알아 봐?"
이렇게 시작한 것이 김씨가 세상 태어나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건축을 하게 된 사연이다.
나는 안 봐도 김씨의 심정에 이해가 갔다. 아마 모르긴 해도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 돈 벌었다는 사람치고 집 안 지어 본 사람 드물 것이다. 딴엔 난다 긴다는 사람일수록 집 짓고 땅 투기하여 돈을 벌었다는 경우가 대부분 아닌가.
은행에 드나드는 것도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한번 가고 두 번 가서 나중에는 은행원과 얼굴을 익혀버리니 이건 퇴근하고 술도 나눌 처지까지 되어버렸다. 조그만 가내 공업으로 평생을 살던 김씨가 은행에 저축하러나 갔지 대출은 꿈도 꾸지 않았는데 갑자기 발전한 것이다.

 
요즘 신용카드 사용으로 문제가 많다고 난리들 치지만 카드를 처음 쓸 때가 망설여지고 문제지 몇 번 써보면 공짜로 돈을 얻는 것처럼 느껴진다. 김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종이쪽에다 도장 몇 번 찍어주니 생각도 않던 돈이 들어오는데 신기했다. 한두 번의 대출이 있고 차츰 간덩이가 커지니 몇 억 원을 우습게 여기게 되었다. 설계를 내고 건물의 기초공사가 시작되자 임대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그래, 한 층의 임대료만 받아도 까짓 대출금 정도야 쉽게 갚을 것이다. 오층에는 살림집을 만들고 나머지 층의 세만 받아도 노후는 걱정이 없을 것이다."
이래서 김씨의 빌딩 건축공사는 시작된 것이다. (2003.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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