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수상 소감(受賞所感) 』---(2)

일흔너머 2008. 4. 21. 08:19

 

 처음 마이크를 잡고 어눌하게 이야기할 때와는 다르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학교에서 학생들을 앞에 두고 수업을 하듯 안정되어가고 듣는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아마 저의 기억으로는 둘째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하였거나 아니면 2학년 정도의 어린아이 때였습니다. 저의 딸이라서 자랑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재치도 있고 똑똑하여 주위의 귀염을 많이 받았습니다. 물론 둘째의 짝꿍이란 남자아이도 우리 둘째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글쎄 아이들끼리 모여 노는데 우리 둘째의 짝꿍인 남자아이가 높은 언덕에서 갑자기 뛰어내린 겁니다. 원래 사내아이들이란 위험한 짓을 잘 하지만 이건 자기 키보다 서너 배는 더 높은 언덕에서 뛰어내렸으니 말이 아니었습니다. 마침 운이 좋아서 질펀하게 물이 괸 진흙 밭에 떨어지는 바람에 크게 다친 곳은 없고 그저 긁히고 옷을 버리는 정도였습니다. 만약 다쳤더라면 주위에 어른들이 없어 도와주지도 못하고 아이들끼리라서 큰일 날 뻔한 사건이었습니다.

 

나중에야 소식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온 부모는 아이를 데려다가 씻기고 혹시 다친 데는 없는가 이리저리 훑어보고 다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었답니다. 그런 과정에서 도대체 이 아이가 왜 그 높은 곳에서 뛰어 내렸는가가 궁금하더랍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답니다.


"얘야, 그 높은 곳에서 뛰어내릴 때 무섭지도 않았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누가 뛰어 내리라고 시켰니? 응?"
시종 울지도 않고 아프단 말없이 또 너무도 당당하게 있던 아이는 부모가 자꾸 다그치자 멋쩍은 듯 고개를 숙이더라는 겁니다. 낌새가 하도 이상하여 '이건 뭔가 사연이 있을 것이다. 다른 아이가 밀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짐작한 부모는 아이를 데리고 이래저래 다잡아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이 남자아이의 대답은 엉뚱하게도 우리 둘째의 이름을 들먹이더라는 것입니다.
"나영이가 함께 있었어요."
"응, 그래 나영이가 어쨌어? 나영이가……. 밀었어?"
"아니"
"그럼 어쨌는데? 답답해 죽겠네. 속 시원히 얘길 좀 해 봐."
"……"
"괜찮아 얘기 해, 응?"
"나영이에게 내가 용감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뭐라고……?"
"내가 용감하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다니까요."
"그래, 용감하다는 것을 보이려고 그 높은 데서 뛰었단 말이지?"
"으응."
"……"


처음 아이로부터 뛰어내린 이유를 들었을 때 부모는 황당하더랍니다.

그랬겠지요.

기가 막힐 노릇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입장에서 한참을 생각해 보니 우스운 일이지만 오히려 이해가 되더랍니다. 그 아이가 우리 둘째를 향한 마음이 무모하리만큼 강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 남자아이는 우리 둘째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하나로 앞뒤 생각지 않고 마치 동물처럼 돌진해 간 것입니다. 그 어린아이가 뛰어내린 동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아름답고 순진한 마음입니까?


저는 그 당시에 남자아이가 했다는 얘기를 듣고 그냥 실없이 웃어 넘겼습니다. 그러나 지금 가만히 돌아보면 저의 처지와 너무도 닮은 것 같아서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 아름다움을 얘기하고자 하는 것보다 지금껏 저도 그렇게 살고자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아내와 우리 식구들뿐만 아니라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저를 인정해 주길 바라면서 그렇게 살아온 것입니다. 여기 있는 어느 분은 속으로 웃을지 모르지만 그 분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특히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은 삶의 목적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저는 젊어 한때 낚시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거의 미쳤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밤낮이 따로 없었으니까요. 때문에 사랑하는 가족도 잊고 오직 '큰 것 한 마리'에 온 정신이 빠져 있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보통은 낚시의 매력을 고기가 낚였을 때 낚싯줄을 당기는 생명의 고동을 손으로 감지하는 소위 '손맛'을 제일 먼저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더 큰 고기를 낚아서 인정받고 싶은 것이 낚십니다.

만약 손맛으로 따진다면 성질이 급해서 파닥대는 피라미의 요동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물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을 때 그 실망감이 문젭니다. 그래서 이 달의 최대어 혹은 올해의 최대어를 낚은 조사(釣師)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낚시의 승패는 능동적인 사냥과 달리 무슨 큰 재주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의 경지에만 도달하면 재주나 기술보다는 오히려 운명에 좌우되는 경우가 더 큽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물어주지 않으면 낚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고기가 입질을 해야하는 겁니다. 물어만 준다면 누가 못 낚아 올리겠습니까? 까짓 용이라도 낚을 자신들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대어를 낚았을 때 대부분의 낚시꾼들은 낚은 사람의 솜씨를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자신에게 행운이 왔을 때도 다른 사람이 그냥 운이 좋아서 낚은 것으로 생각지 말고 멋진 솜씨로 자기를 칭찬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변덕이 좀 심한 편입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낚시보다 테니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직장을 옮기어 주위에 있는 친구들이 바뀐 탓이 더 큰 이유입니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려면 그들의 취미에 동참하여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테니스란 것이 하루 아침에 잘 칠 수 있는 놀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될 듯 될 듯 하면서 안 되는 것이 테니스의 묘미입니다.

 

구기운동이란 것이 다 그렇듯 보면 쉬운데 막상 자신이 하려고 하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너무 쉬워서 칠 때마다 홈런이 나온다면 무슨 재미로 야구를 하며 홈런의 매력이 있겠습니까? 잘 안되고 가물에 콩 나듯 어쩌다 터져야 홈런이 귀하고 좋은 것입니다. 테니스가 바로 그랬습니다. 될 듯 하면서 안 되는 것 그것이 매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악착같은 저의 성격과 타고난 신체조건 탓으로 나날이 발전을 거듭하여 결국 개인 랭킹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무슨 대외경기가 있으면 실력을 인정받아서 대표로 발탁되는 것입니다. 혹 내가 무슨 바쁜 일로 경기에 빠지면 다른 사람들이 팀의 실력저하를 안타까워하며 걱정을 하는 것입니다. 나의 테니스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겁니다. 어느 곳에서나 나를 인정한다는 것 그리고 필요로 한다는 것 이것은 인생에서 얼마나 살 맛나게 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나이가 예순이 넘은 노정객이 대통령에 당선되어 고향을 찾았을 때의 이야기가 신문에 난 것을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선거관리위원장이 주는 대통령 당선증을 아버지 앞에 내놓고 큰절을 올리며,
"아부지, 제가 이것 때문에 삼십 년 넘게 고생했심더."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또 아무리 대통령에 당선되어 국민 모두로부터 인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세상 어느 누구보다 자식으로서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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