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참, 사람 사는 게 그런 거 아니겠소.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게고 세월이 흐르면 노인이 되는 거고……."
노인은 나물 비빔밥 한 숟가락을 입보다 크게 떠 넣으며 쳐다보지도 않고 넋두리를 내 놓았다. 지금껏 대화의 상대를 못 만나다가 무척 반가운 모양이었지만 나는 노인의 얼굴에 무슨 흠이라도 찾을 양으로 요리조리 살피며 괜한 트집이라도 잡을 듯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은 내가 어떤 짓을 하든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세상은 거저 꼭대기만 있어서는 안되지. 다리도 튼튼해야 하고 허리도 있어야 하고 고루고루 다 건전해야 피라미드처럼 버티는 거지."
"아무래도 세상은 힘있는 젊은이들이 움직이는 것 아닙니까?"
노인의 말만 듣고 있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문제는 그 도가 지나치다 는 거지. 요즘은 그저 젊으면 다야, 젊으면 다라니까. 기고 만장하지. 세상 모두가 저거들 차진 줄 알고 혼자 잘났지."
노인은 약간 흥분한 듯 숟가락을 멈추고 내 얼굴을 응시하였다.
그리고 정말 하고픈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무슨 그래프를 내놓고 장기곡선이 어쩌고 상승곡선이 어쩌고 하는 녀석 치고 돈 벌었다는 녀석 본적이 없어. 증권이 학교에서 하는 그런 공부처럼 될 것 같으면 머리 좋고 공부 잘 하는 녀석들 돈 다 쓸어가게?"
비웃듯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사는 게 그런 거야. 그래서 어렵다는 거지. 산다는 게 공부처럼 쉽게 하나 보태기 하나가 아니거든. 나도 이제야 겨우 눈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시건방진 녀석들 설쳐대는 꼴이란……. 하긴 나도 젊었을 때는 실수도 하고 넘어지기도 했지만……."
젊은이를 나무라는지 자신을 나무라는지 아니면 자기의 과거를 돌아보는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양푼을 들고 그릇을 긁더니 나머지 한술을 떴다. 잠시 기다려 본격적으로 의문점을 캐 볼 양으로 물을 건네며 다가앉았다.
"꿩 잡는 게 매라고 어쨌거나 투자해서 돈 먹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요즘같이 좋지 않은 장에서 어르신네는 그래 얼마나 벌었습니까?"
이건 아예 질문이기보다 코 앞에다가 주먹을 들이미는 식으로 불쑥 내뱉었다.
호기심 반 기(氣)를 꺾어버리겠다는 마음 반으로 말이다.
"허허, 날 우습게 보는 구만. 모르긴 해도 이 객장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섧지. 하하."
노인은 벌써 눈치를 챘다는 듯 호탕하게 웃었다.
나이에 비해 너무 가지런한 이빨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하얗게 드러나 보였다.
객장에서 들리는 말로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전자 주식을 가장 어려웠던 IMF 난리 때 이 헐무리한 노인이 삼 만원에 삼 천주나 쌌단다.
그런데 오늘 시세가 삼십 만원에 육박하고 있었다. 아무도 인정하지는 않지만, 지금보다 두 배로 뛸 것이라며 노인은 팔지않고있다.
"무슨 정보도 없이 어떻게 종목을 선정하고 사고 팝니까?"
그러자 우습다는 듯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내 귀를 의심케 하는 벼락 같은 말이 튀어 나왔다.
"객장 분위기를 사지. 사람들 표정을 보면 알거든. 모두가 똥 주워먹은 곤지 상을 하고 있으면 살 때야. 웃고 떠들며 좋아서 날뛸 때는 파는 거야. 전에 누구한테 들으니 주식투자는 시기를 잘 맞춰야 한다던구먼. 물론 이 정도는 누구나 다 알지. 하지만 아는 것하고 실천하는 것하고는 달라.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면 머리가 복잡해서 오히려 판단을 못 내리거든. 나는 무식해서 사고는 기다리고 팔고는 미련 없이 돌아서지."
늙은 쥐가 독 뚫는다는 옛말이 떠올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꽁트-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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