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엄마가 큰일이다 』

일흔너머 2008. 7. 30. 11:36
 

 

닷새에 한번씩 열리는 장날은 시골 사람들의 행복의 장(場)이다.

만남이 있고 대화가 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나는 소통의 시간이다. 때문에 온갖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전파되고 흩어지는 것이다.

 

박 영감은 이른 조반을 먹고 장으로 나섰다.

오늘은 힘든 농사일도 거의 끝나고 해서 가을 겨울 두 철만 잘 먹이면 내년 봄에는 어지간한 밭일을 할 정도로 송아지가 크겠지 하는 마음으로 큰 소를 팔아 송아지로 바꿀 요량이다.

 

아직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풀숲을 지나 장으로 가는 박 영감 발길이 가볍다. 잘만 되면 오전에 큰 소를 팔고 오후에는 인물 좋은 놈으로 송아지 한 마리 골라 오겠지 하는 마음이 걸음을 가볍게 한 것이다.

 

그런데 우시장으로 들어가는 초입에서 사돈을 만났다.

이태 전에 둘째 딸을 등 너머로 시집을 보냈는데 딸년 소식도 잊고 살다가 사돈이 얼마나 반가운지 손을 잡고 가까운 국밥집으로 들었다. 사돈도 소를 팔려고 왔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인사에 그만 소는 뒷전이고 오후 늦게까지 술판이 벌어지고 말았다.

 

시골 사람들 행실이 대부분 그렇지만 바쁠 게 없다. 안 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안 되면 모레 하면 되는 것이다. 오늘 안 팔면 다음 장날 오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사돈은 언제 또 만날 것인가. 결국 파장이 되어서야 자리를 일어났다.

 

그래도 헤어지기 싫어서 두 사돈은 서로를 붙잡고 한참을 같이 걸어오다 취했으니 조심해 가라고 열 번도 더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서로 서로 소를 태워 주면서 자신의 소에다가 사돈을 태워 준 것이었다.

 

그러니까 소를 팔려고 왔다가 팔지는 못하고 소를 바꾸어 버린 것이었다. 소란 녀석은 개처럼 집을 찾아가는 기억력이 대단하다. 어두운 밤인데다가 취중이라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소가 가는 대로 끌려가다시피 집으로 갔다.

 

아침에 눈을 뜨는데 밖에서 둘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박 영감은 반가운 마음에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왔다. 어제 장에서 사돈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할 겸해서 정말 반갑게 뛰쳐나간 것이다.

 

“얘야 정말 오랜 만이다. 친정에는 언제 왔느냐?”

아침밥을 지으려고 하다가 갑자기 친정아버지를 본 둘째딸은 정말 놀랐다.

“아버지가 웬 일이세요? 어떻게 저 방에서……?”

 

박 영감은 둘째딸의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고는 이게 아니란 걸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사돈과 만나고 헤어진 어제 일을 번개처럼 떠올려 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허탈하게 내 놓은 한 마디 절규,

“큰일이다. 나는 괜찮지만 너희 엄마가 큰일이다.”

 

그리고는 등 너머 집으로 냅다 뛰어가는 것이었다.             <完> 꽁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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