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북경에서 서안까지 』---(1)

일흔너머 2008. 8. 14. 21:00

 

학교 동료들과 어울려 해외여행을 하면 각자 전공분야가 달라서 재미난 서로의 지식도 나누고 돌아와 추억도 나누고 좋은 점이 한 둘이 아니다. 해서 매 겨울 방학이 되면 얼마간의 여행비를 다달이 거두어 모은 돈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선생님들과 함께 떠나곤 했다.

 
무슨 일이나 먼저 말을 꺼내고 또 주선하는 사람이 있어야 일이 이루어지지만 이번에는 내가 정말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은 많은 사람을 모아 가면 여행사에서 가이드의 몫으로 열 명에 한 명분의 비용을 할인해 준다는 것을 이야기하다가 그것을 N분의 일로 나누면 여행경비가 거의 이십 퍼센트 가량이 싸지니 가까운 곳으로 함께 가자고 권해버린 것이었다. 그 정도의 매력이라면 많은 분이 참가할 것이라 믿고 코스도 일부러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북경과 서안 이렇게 관심이 높은 곳으로 일정표를 짰다.

 

그러나 그것은 주선하는 나의 욕심에 불과하였지 실제 참가하는 선생님들은 별로 탐탁해 하지 않았다. 물론 여행이 끝나고 돌아와서는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지만 말이다.
열 명을 모으는 것이 어려운데 거기다가 한 명을 더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것이다. 물론 우리는 억지로 스물 두 명을 목표로 열심히 끌어 모았다. 결국 모자라는 인원은 같은 동료교사가 아닌 나의 절친한 친구 부인과 아들 딸 이렇게 네 명을 끌어 들였다.

 

그리고 출발하는 날까지 한 사람이 안 간다면 또 다른 사람을 충원하고 또 충원하고.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정말 못할 일이었다. 이런저런 곡절을 겪으며 「북경―서안 여행단」은 대구국제공항을 떠날 수 있었다.


지금은 올림픽으로 난리를 치르고 있지만 어스름이 내리는 겨울의 북경은 춥다는 기억을 지우더라도 어딘가 모를 애수를 띠고 있었다. 비행기가 그다지 높지 않은 그만그만한 단독주택들이 도시계획으로 모눈종이에 그려진 것 같은 상공을 한참이나 지나서야 베이징 서우두 (北京首都)국제공항 활주로에 내려올 수 있었다. 공항은 규모가 아주 컸지만 오래되고 시간이 멈춘 그런 기분을 자아내게 하는 도로와 차들을 보여주었다.

 

여행사들 대부분 그렇지만 늦게 도착하여 호텔에 머물게 함으로써 일박의 경비를 더 받고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아무 하는 일없이 거저 저녁밥을 먹고 베이징 서커스를 관람하는 걸로 첫날 일정은 끝났다.

 

아침에 일어나 여행사의 사장님과 하루 일정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오늘은 우선 자금성과 천단공원 그리고 왕부정거리를 본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이름난 관광명소라 대단한 기대를 가지고 나섰다.


자금성은 보통의 관람 코스를 반대로 접근하였다. 그러니까 경산이 있는 후문쪽에서 입장하여 천안문쪽으로 나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명·청대의 황궁으로 1987년에 이르러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규모가 어마어마하고 아름다웠다. 다만 섬세한 면은 우리의 궁궐을 따라오지 못했다. 장방형으로 만들어졌고 방만 만 개에 한 개가 빠진다고 했다.

 

자금성이란 「천자의 궁전은 천제가 사는 '자궁(紫宮)'과 같은 금지 구역(禁地)이다」는 데서 연유되었단다. 일반적으로 자금성은 외조와 내정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오문과 태화문을 지나면 흔히 '3전'이라 부르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이 나타난다. 3전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자금성의 내정에 이르게 되고 이곳에는 건천궁, 교태전, 곤녕궁 등이 있으며 동쪽과 서쪽에는 각각 동육궁과 서육궁이 있다. 관심을 가지고 하나하나 관람을 하려면 꼬박 하루가 걸리고 주마간산격으로 거저 지나가면서 훑어보는데도 2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로 넓은 곳이었다.


외침을 방어하는 목적으로 궁전 둘레에는 10m 높이의 담과 헤자가 있고 첩자들이 숨어들지 못하게 자금성 바닥을 사십 겹의 보도 블록을 겹겹이 깔았다고 했다. 그리고 성안에는 자객이 숨을 것을 대비하여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것이 특징이라 했다.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이유를 또 다른 면에서 풀었는데 가이드의 말로는 우스개인지 아니면 정말로 풍수지리설에서 그런지는 몰라도 네모 안에 나무 목자를 쓰면 곤(困)자가 되어서 그렇다라고 했다.

 

그리고 어디를 가난 비둘기가 문제였다.

궁궐의 구석구석에 집을 짓고 배설을 하여 비둘기가 집을 짓지 못하도록 온 궁궐 둘레에는 보기 싫은 망을 쳐 두어 어딘가 어색하였다.


우리는 북쪽 신무문(神武門)으로 들어가 남쪽 오문(午門)으로 나왔는데 오문의 가운데는 오직 황제만이 드나들 수 있다는 그 문으로 나왔다. 지금 세상에 황제가 어디 있고 신하가 어디 있는가마는 우리의 조상은 원군을 얻으려고 저 오문 밖에서 보름간이나 꿇어앉아 황제를 배알하기 위해 간청했단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황제가 누리던 그 영광과 권세를 돈 몇 푼으로 여행비를 마련하여 아내와 나란히 어깨를 펴고 거닐 수 있었다는 것은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것이었다.

비록 겨울 아침 싸늘한 공기 속에서 떨고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은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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