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고디탕 』

일흔너머 2009. 12. 2. 15:39

 

 

 

 

함께 근무하던 장 선생님은 그림도 잘 그리고 이야기도 참 구수하게 했다. 협의회를 한다든지 휴게실에서 우리는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도 들었다. 장 선생님은 우리보다 연세가 한참 많았지만 원래 장수집안인데 부모에 대한 효가 극진하였다. 그 중에 선생님의 자당이 끓이는 '고디(경상도에서는 다슬기를 고디라고 한다.)탕'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 기억에 남아있다.


자당은 구순의 노인이라 거동이 불편하지만 일부러 '엄마가 끓여주는 고디탕이 먹고 싶다'고 이야기를 꺼낸단다. 그 순간부터 자당은 자신의 연세와 몸은 잊고 온통 고디탕에만 정신이 빠져버린단다. 그리고 새벽 일찍 일어나 대구 역전의 번개시장으로 가셔서 가장 물 좋은 걸로 사서는 삶아놓고 하루종일 붙어 앉아 일일이 깐단다.

 

그리고 갖은 나물을 넣고 푹 끓여 저녁 늦게야 '고디탕'이 완성된단다. 퇴근을 한 장 선생은 그 고디탕을 먹으며 '역시 엄마가 끓여야 제 맛이 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며 온 가족이 먹는단다. 노인이 기가 나서 하루종일 고된 일을 하고도 피곤한 줄 모르고 '언제든지 먹고싶으면 이야기해라. 내가 끓여 주께.'라고 한단다. 이것이 아들의 효도고 엄마의 자식 사랑이며 가족인 것이다.

 

나는 장 선생님의 자당이 끓여준 고디탕을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그 맛은 알 것 같았다. 우리 엄마도 고디탕을 잘 끓이셨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도 그런 고디탕을 한번 먹어보리라. 그리고 어지간히 이름난 고디탕 집은 다 들어가 보았다. 그러나 그 옛날 우리 엄마가 끓여준 그 맛이 아니었다. 물론 이미 돌아가신 엄마가 다시 오셔서 끓여줄 리도 없을 것이다. 친구 따라 청주의 무심천에서 [올갱이국]을 먹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물론 경북 청도의 유명한 할머니 [고디탕]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대구 경북대 병원 응급실 맞은 편의 골목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조그만 키에 초로의 아줌마가 끓여주는 고디탕, 지금까지 몇 년째 먹고 있지만 이 보다 더 깊은 맛을 내는 집은 찾지 못했다. 사시사철 똑같은 국 맛이다. 도대체 어디서 그렇게 많은 다슬기를 잡아오는지 궁금해서 한번 물어보았다. 강원도 태백에 사는 사람이 어느 골짜기에서 잡아 이렇게 공급한다고 했다. 물론 여름에 많이 잡아 겨울에는 냉동고에 보관한다고 했다.

 

한 그릇에 사천 원 할 때부터 다닌 것이 지금 육천 원하니까 어지간히도 다녔다. 지금은 그 아줌마가 오직 고디탕 하나로 삼덕동의 집을 사고 돌 지난 외손녀를 안은 초로의 할머니가 되었다. 집터가 좋아서 발복(發福)을 한 것인지 아니면 고디탕 맛이 좋아서 번창(繁昌)한 것인지 모르지만 대구 경북대 병원 응급실 쪽으로 오는 기회가 있으면 삼덕로타리쪽으로 난 작은 골목에 [화신식당(053-422-2673, 423-0424)]의 고디탕이 얼마나 깊은 맛인지 한번 경험하고 갈 일이다.

물론 이 온달을 들먹이면 시원한 국물을 얼마든지 공짜로 더 먹을 수 있다는 걸 귀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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