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불쌍한 노인네 』

일흔너머 2009. 12. 25. 11:37

 

 

 

 

사람들은 치과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입을 억지로 크게 벌리고 숨을 잘 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잇몸을 파고 이빨을 치료하는 것은 싫다는 차원을 넘어 고통 때문에 두렵기까지 하다.


일년 전부터 말을 할 때 입에서 역한 냄새가 나고 양치질을 할 때 잇몸에서 피가 났다. 어지간한 것은 그저 조용히 쉬면 몸이 스스로 치료를 해 준다는 신조를 가지고 살아왔기 때문에 아파도 병원을 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안 하던 양치도 자주하고 비타민도 챙겨 먹으며 특별히 신경을 써 보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다. 아내는 옆에서 병원을 가라고 닦달을 했다. 그리고 TV에서 선전하는 잇몸 약을 사서 권하기도 했다. 하지만 약 때문에 속만 쓰리고 아플 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찬물을 마시면 시리고 아파서 결국 가까운 동네 치과에 갔다. 제법 나이 살 먹은 의사가 입안을 들여다보더니 '이것도 뽑아야 되겠고 저것도 뽑아야 되겠고….'하면서 남의 이라고 어쭙잖게 여기는 것이었다. 결국 늙은 노인의 쓸데없는 잔소리라 흘려 들으며 병원을 나오고 말았다.


병원 문을 나설 때까지는 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여 '까짓 안 되면 잇몸으로 살든지 틀니를 하지 뭐'하였지만 어쩌다 얼음 과자나 찬물을 마실 때는 그저 설설 매는 것이었다. 그럭저럭 또 두어 달이 지났다. 결국 어느 날 친구가 권하고 아내가 등을 밀어 어쩔 수 없이 대학병원의 치과를 찾았다.

 

인턴인지 레지던트인지 모르는 가냘픈 풋내기 아가씨가 담당을 했다. 그러니까 전문의가 이래저래 지시를 내렸는데 종이 한 장을 들고 뾰족한 침으로 내 잇몸을 하나하나 찌르는 것이었다. 내가 아파하면 그만 찌르고 그 깊이를 재는 것이었다. 한 삼십분을 그렇게 찔러 대더니 담당의사를 찾아 그 종이에 적힌 결과를 보였다.

 

그러자 담당 전문의는 다짜고짜 달려들어 아까 그 침으로 다시 찌르며 '이걸 이래서야 되나? 모두 일 센티는 더 보태야 되겠다.'라며 지시를 내리는데 '저 안에 이것하고, 이것하고 두 개는 빼.'라는 것이었다. 그 의사의 말을 듣고 속으로 '제것 아니라고 너무도 쉽게 빼라는 군.'하였지만 알고 그르겠지 하고는 대고 있었다. 정말이지 남의 이빨이라고 한번 휘 둘러보고 그렇게 쉽게 빼라고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날은 대충 약을 바르더니 내일 오전에 와서 발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마침 아내는 어금니를 뺏는데 다 못하고 남은 찌꺼기가 자꾸 염증을 일으켜 그걸 빼기로 하고 이튿날 함께 찾아갔다. 내가 생각할 때는 멀쩡한 이빨을 그것도 두 개나 한꺼번에 빼고 아내와 같이 피를 흘리며 사나흘을 고생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정도로 가서 치주 치료를 받는다. 말이 치료지 정해진 날짜에 의사를 만나면 그저 몇 번 드르륵 갈고는 어떤 때는 팔만 몇 천 원, 어떤 때는 육만 몇 천 원을 내라는 것이다. 간호사 말로는 의료보험이 안 되어서 그렇다고 했다. 두어 달 전에 의사에게 이렇게 자꾸 치료만 하면 어떻게 하느냐 뺀 자리가 불편하니 다른 뭘 해야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임플란트]를 하라고 했다.

 

그러면 얼마나 돈이 들겠느냐고 물으니 간호사한테 물으라고 했다. 의사는 학처럼 고귀하게 사니까 돈 같은 더러운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투였다. '나 참 더러워서….'라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간호사를 만나 물었다. 그랬더니 하나를 하는데 뭐 이렇게 하면 얼마 또 저렇게 하면 얼마라고 설명을 하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둘을 다 하려면 제일 나쁜 걸로 오백은 더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그 절반 값으로 하였다는 것을 들은 기억이 났다. 그래서 조금 불편하지만 참고 기다렸다가 나중에 좀 더 싸고 편한 곳을 만나면 하리라 마음을 먹으며 돈이 없다는 핑계를 댔다.


어제는 치주 치료를 하는 날이다.

이왕 임플란트를 여기서 하지 않을 건데 자꾸 치료를 하며 돈을 쓰는 것도 뭐하고 해서 어지간히 나았으니 치료를 그만 하겠다고 의사에게 말했다. 그랬더니 나를 데리고 한참 설득을 하는 것이었다. 옛날 노인들 이빨이 하나도 없이 빠진 것은 치주 관리를 잘 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두어 달에 한번씩 이렇게 관리를 하다가 아주 좋아지면 그 때 그만 두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며 나를 쳐다보는 의사의 눈길에 연민의 정이 서려있었다. 치료를 하는 동안 내내 이 사람이 왜 이런가 의아해 하며 평소보다 더 꼼꼼히 해 주는 것 같아서 이상하게 생각했다. 눈이 침침하여 어지간한 글씨는 잘 보이지 않는데 치료를 다 마치고 일어나면서 우연히 의자 앞에 달린 모니터에 내 이름을 보았다.

 

그 밑에 깨알 같이 작은 글씨로 내가 의사에게 얼마나 불쌍한 노인네로 보였는가를 알리는 한 줄의 메모가 클로즈업되면서 다가왔다.
「경제적 사정으로 임플란트 시술을 미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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