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병이 들어도 ……. 』

일흔너머 2010. 4. 6. 13:43

 

 

산책길에 특이한 걸음걸이로 걷는 두 남자를 만났다.
그들 두 사람을 따라가며 유심히 살펴보니 오른쪽 팔과 오른쪽 다리를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평일 오전에 이렇게 강을 걷는다는 건 나처럼 퇴직을 한 경우이거나 아니면 건강 때문에 일을 그만 둔 실직자들 일 것이다. 무슨 오락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특이한 동작을 하며 서로 정답게 이야기를 하는 걸로 봐서 오래 전부터 함께 걸으며 운동하는 사이인 것 같았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걷고 운동하여 제발 저런 병에는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강가의 동산에 올랐다. 말이 동산이지 조그만 둔덕이다. 요즘은 지방자치단체에서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서 이런 곳에도 운동기구를  설치해 놓았다. 둑길을 따라 벚꽃이 피어나는 걸 내려다보며 운동기구 이것저것을 건드려 본다.

 
그리고 멀리 다리 위를 바쁘게 지나가는 자동차를 지켜본다. 모두들 바쁘다. 햇빛이 한참 좋은 이런 봄날에도 꽃 한번 옳게 쳐다볼 여유도 없다. 얼마 전까지 나도 저렇게 살았다. 살려고 일을 하는지 죽으려고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성보학교]라는 장애인 학교가 있다. 재활시설과 함께 있어서 제법 많은 사람을 만난다. 어저께도 나를 보고 '운동합니까?'하고 인사를 하더니 '밥 먹고 가요.'하던 사람이 무슨 박스를 들고 지나가며 인사를 한다. 나이는 마흔 정도로 보이는 데도 아직 어린아이의 행동을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인사가 무조건적이라는 걸 안다. 장애인들의 시설을 방문하여 봉사활동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안 된다. 그들은 말과 생각이 다르고 행동이 다르기 때문이다. 말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하고 그 책임은 생각지 않는다. 단순하지만 흔히 우리가 말하는 단순하다거나 소박하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있다. 정신적 사고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모자란다는 것이다.


고향마을에는 이름난 정신병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 신사라는 별명을 듣던 치매환자가 있었다. 지금 이야기하니 치매(癡呆)지 그때는 노망(老妄)이라 했다. 그는 며느리를 보고도 존댓말을 했다. 누구에게나 어려워하고 존대하고 주면 주는 대로 먹었다. 다만 그 뒤가 문제였다. 밥을 먹고는 밥그릇에다 대변을 담아두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굴 해치거나 욕하지 않아서 별명이 신사인 것이었다.


우리 옆집에는 귀가 어두운 치매를 앓는 할머니가 산다.
늦은 밤이나 새벽에 혼자말로 그것도 온 동네가 다 들으란 듯이 몇 시간씩 떠든다. 그 식구들은 아마 고생이 심할 것이다. 제법 떨어진 방에서 듣는 내가 잠을 이룰 수 없는데 하물며 식구들은 어떻겠는가?

 

병이 들어도 의사가,
"술을 마시지 말고, 고기는 될 수 있으면 멀리하고, 가만있지 말고 부지런히 운동하십시오"
라는 말 대신에
"그저 맛있는 것 많이 드시고 푹 쉬십시오."
하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치매가 와서 아내와 자식까지 몰라보는 경우가 되더라도,

고함지르며 욕하지 않고 다소곳하게 웃으며 좋은 말만 하는 그런 병이 들어 그저 깨끗한 기억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으면 좋겠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그래도, 잘 살았다 』  (0) 2010.07.09
『 바닷가 전원주택 』  (0) 2010.05.20
『 세상에는 사람이 산다 』  (0) 2010.04.02
『 어머님께 묻고 싶다 』  (0) 2010.03.17
『 아침 마당 』  (0) 2010.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