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창밖에는 험한 눈보라가 몰아쳤지만 계곡 건너편에서는 양과 염소들이 태연히 풀을 찾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세상 정말 많이 변했다.
장건이 십 삼 년이나 걸린 거리를 우리는 네 시간의 비행으로 편안하게 달려왔다. 하지만 자연의 위력은 곳곳에 숨어 있었다. 아직 이른봄이라 햇빛은 약했지만 너른 사막에 내려 쬐는 열기는 국지적 저기압을 만들고 그 저기압의 중심에 일어나는 작은 회오리바람을 하밀로 이동하는 차창 밖으로 볼 수 있었다.
하밀에서 왕복 세 시간 이상이 걸리는 빠리쿤 초원으로 향했다. 하밀에서 북으로 사막을 넘어 천산산맥의 정상 부근까지 갔다. 꼬불꼬불한 길은 계곡을 따라 끝없이 펼쳐졌다. 처음에 우리는 계곡에 흐르는 물을 보고 이런 사막에서 물을 볼 수 있다고 신기해했다. 물론 깨끗한 물이 아니라 석회를 풀어 논 것 같이 뿌였게 흐려 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유목민 카자흐족(하사커(哈薩克族))의 장평(유목민족의 이동식 가옥)이 가끔 나타났다 사라졌다. 양들과 염소, 어쩌다 말까지 무리를 지어 풀도 잘 보이지 않는 산기슭을 헤매는 것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었다. 닫혀진 차안의 공기는 우리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꼬불꼬불한 도로는 급기야 우리 모두에게 멀미를 가져왔다. 무슨 핑계를 대어서라도 차에서 내려 산뜻한 공기를 마시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중국 여행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그저 기다려야 한다. 시간도 버려야 한다. 무슨 일이 이루어 질 때까지 다만 기다리는 것이다. 차가 충분히 산속으로 들어갔다는 기분이 들 때쯤 희끗희끗 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차창을 닦는 윈도우 브래쉬가 눈에 파묻힐 정도로 퍼부었다. 함박눈이었다. 여름날 소나기처럼 퍼부었다. 결국 초원은 포기하고 설원을 구경한 셈이었다. 한참을 가다가 제법 너른 길을 만나 차를 세우고 눈길을 걸으며 차멀미를 진정시켰다.
[눈은 순식간에 천지를 하얗게 덮었다. 고지대의 폭설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을 만들었다...!]
돌아와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그 날 그 초원에 내린 눈은 70센티미터를 넘었단다. 조금만 더 지체했다면 돌아오는 길이 끊겼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한참을 달려오다가 잠시 볼일을 보라고 해서 천산산맥의 중간쯤 되는 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우리들의 바로 앞 2, 3십 미터 떨어진 곳에 야생의 사슴이 우리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경험은 생전 처음이었다. 가이드 말로는 이곳에는 저런 야생동물을 사냥하며 살아가는 사냥꾼이 있다고 했다.
[한낮에 해가 비칠 때는 산 정상 부근의 붉은 바위들이 정말 불붙는 듯 보인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화염산을 보았다.
서유기에 나오는 바로 그 산이다. 손오공이 파초선으로 불을 껐다는 바로 그 산이다. 정오가 되면 산 윗 부분이 빨갛게 보인다고 했다. 황혼에도 그렇게 보였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민둥산, 온통 산화철이 뒤덮어 불붙는 듯 붉게 보이는 화염산, 정말 거기에 잘 어울리는 손오공이야기까지 어느 하나 어긋남 없이 조화로운 긴 역사의 나라 중국이다. 아마 이런 것들이 지금 중국의 힘이 아닐까 혼자 조심스런 결론을 내려본다.
투루판으로 가는 길에는 많은 나무를 심어 놓았다. 키가 2, 3 미터 정도의 어린 나무를 도로를 따라 양쪽에 그것도 한 줄이 아니라 일여덟 줄씩 심었다. 가이드 말로는 투루판의 공무원과 회사원이 6개월 간 휴가를 내어 심었다고 했다. 대단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한다면 한다는 식이다. 모든 걸 팽개치고 만리장성을 쌓듯 그렇게 심은 것이다. 아마 저 나무가 자라면 투루판의 기후가 바뀔 것이다. 정말 어마어마했다.
투루판으로 가는 길에 한자로 토노반(吐魯番:Turfan)이라고 적혀있어 옛날 '도노반'이란 영화 제목이 자꾸 생각났다. 그래도 도노반이 서양의 그런 이름은 아닐 것이다. 아마 토번국에서 유래된 것이리라. 중국에서는 우루무치도 오노목제(烏魯木齊)라는 한자로 표기하여 한참씩 생각하게 했다.
[저 멀리 흰 만년설을 업고 있는 산이 박격달산...!]
투루판 분지의 오아시스는 멀리 북쪽으로 5000 미터에 달하는 만년설로 덮힌 박격달산이 있어 더욱 운치가 있어 보였다. 특히 만리장성, 대운하와 더불어 중국 3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카레즈'가 있다. 지하에 터널을 뚫어 만든 감아정(坎兒井)으로 일종의 관개시설이었다.
지표에서는 너무 건조하여 물이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수십 킬로미터를 지하땅굴을 파 수로를 만든 것이다. 말이 지하 땅굴이지 막상 그 현장을 보면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높은 산맥의 봉우리에 1년 내내 쌓이는 눈을 투루판의 분지까지 지하로 끌어온 것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수백 개의 수로가 거미줄같이 얽혀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느끼는 역사란 결국 자연과 인간의 고집 싸움인 것 같았다.
도저히 살지 못할 척박한 지역에 인간의 미련함은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스스로 내린 결론에 의해 고통받고 자기 스스로를 얽어매는 것이다.
당자는 모른다.
그저 테두리 밖에서 보는 여행자에게만 고통이 보이고 그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이렇게 말은 깨달은 척 하지만 막상 그들의 처지가 되면 나도 별수 없이 그들과 똑같이 저지르고 말 것이다.
미련한 인간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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