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실크로드 - 소문보다도 더 험한 길 』---(8)

일흔너머 2010. 5. 28. 14:25

 

 [ 끝이 보이지 않는 벌판을 풍차가 온통 덮고 있었다...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풍차는 어지럽게 돌아가고... ]

 

여행이 아무리 재미가 있고 좋아도 결국 마쳐야 하는 시간은 다가온다.

마치 우리들의 삶이 유한(有限)하듯이 언젠가는 끝내고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너무 여행에 지친 탓이라 곤하게 잠이 들었던가보다. 모닝콜도 듣지 못하고 자다가 눈을 뜨니 벌써 일곱시였다. 아내와 나는 다른 사람들이 기다릴 것 같은 느낌에 서둘러 짐을 챙기고 부랴부랴 세수를 하고 호텔 로비로 나갔다. 그런데 로비에는 아무도 없고 우리가 탈 버스 운전사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기다리니 다른 방에서 주무신 부부가 나왔다. 그리고 아침에 모닝콜이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반시간 늦게 출발한다고 했다.

 

 [ 우루무치 시내의 쌍동이 건물 앞에 있는 인민탑. 그리고 인민 광장...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침을 먹고 '괜히 우리가 서둘렀구나.'하며 천천히 방에 올라가서 혹 빠트린 물건이 있는가를 살폈다. 아내가 쓰던 샴푸처럼 생긴 튜브 하나를 찾아 내려왔다. 이제 모든 걸 버리고 돌아가는 것이다. 이틀 간의 투루판 여행을 마치고 우루무치로 향했다. 투루판에서 약 세 시간이 걸린다고 하지만 우리는 남산목장에서 승마라든가 전동차라든가 하는 체험 일정 때문에 일찍 길을 나섰다.


버스는 우루무치로 향해 달렸다. 두어 시간을 달려 차창 밖으로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는 걸보고 추위에 두꺼운 옷으로 갈아입고 싶었다. 배낭에서 옷을 찾다가 방한복을 어디 두었느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마 버스 아래 짐칸에 실렸을 것이라 했다.

 

우리는 그때까지 몰랐다. 버스 운전사에게 '짐칸을 열어라.'고 해서 트렁크를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찾아도 옷이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문득 빠리쿤 초원에서 눈을 만나 흠뻑 젖은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옷을 말린다고 호텔의 옷장에 반듯이 걸어둔 것이 이제야 생각났다. 가이드에게 호텔로 전화를 해 보라고 하니 호텔에서 옷을 찾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찾았다고 무슨 방법이 있는가. 여기는 중국이다. 벌써 두시간이나 달려 왔는데 옷 하나 때문에 다른 여행객들과 함께 돌아갈 수도 없거니와 한번 지나가면 다른 팀이 오는 것이 또 언제 일지도 모르는 작은 여행사가 아닌가. 이때 집사람이 정말 빠른 결단을 내려주었다. '그 옷 어지간히 입었으니 포기하세요. 돌아가면 다른 옷 사줄게요.'


간단했지만 옳은 판단이었다.

가이드 말로는 우리 돈으로 6, 7만원이 든다고 했다. 옷을 가지고 우루무치까지 한 사람이 와서 다시 투루판으로 돌아가야 하니 그 비용이 만만찮은 것이다.


돌아오며 생각해 보았다. 우리나라는 이런 면에서 참 좋은 나라다. 이런 경우 '퀵 서비스'나 '택배'라는 것이 있다. 그저 5천 원 내외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가. 오토바이를 타고 신나게 달리는 택배 아저씨의 등에 '배달민족'이라고 써 있었던 걸 자주 보았다. 이래서 우리가 「배달민족」이라고 하는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번 여행에서 또 한번 느끼지만 중국은 큰 나라다.

우루무치로 오는 도중에 사막에 설치된 풍력발전소를 보고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우리나라의 영양 맹동산에 50개미만의 풍차를 보고도 놀랐는데 이건 아예 헤아릴 수가 없었다. 사막 전체를 덮으려는 기세다. 수천 개의 풍차가 마침 우리가 지나는 길에서 바람을 맞아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도 풍차의 도열은 끝나지 않았다.

 

[ 우리가 찾아갔을 때 목장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어서 지나가는 행인도 찾을 수 없었다... ]

 

남산목장에서 말을 타고 어쩌고 하는 체험행사는 온통 덮인 눈 때문에 이뤄지지 못했다. 그냥 버스를 내려 눈 덮인 목장을 걷는 걸로 대신하였다. 멀리 만년설을 이고 고즈넉이 누워있는 박격달산을 바라보며 이국의 정취를 안고 우루무치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한가한 오지를 다니다가 복잡한 우루무치 시내에 도착하자 다들 정신이 없었다. 시내를 한꺼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홍산공원(紅山公園)에서는 더욱 그랬다. 홍산공원은 시 중심부에 있는 해발 900여 미터 산을 다듬어 만든 시민들의 휴식처다. 깎아지른 서쪽 절벽부분이 붉은 색이라 홍산(紅山)이라 한단다.

 

[ 공원에서 가장 높은 곳에 홍산탑이 있었다...!  오른쪽으로 절벽이 경사가 심했다. 우루무치 시내가 내려다 보이고... ]

 

공원에는 중국 어디나 그렇지만 사람들로 북적이었다. 아마 새로 한해를 맞이하여 시민들을 맞이하려고 그러는지 놀이동산을 신축하고 있었다. 언제 봐도 섬뜩한 인민군복장을 한 사람들이 연신 담배연기를 뿜어대며 벽돌을 쌓고 있었다.


언뜻 봐도 목욕 한번 하지 않은 꾀죄죄한 차림인 것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일용직 노무자들이었다. 여행을 하며 저런 사람들을 만나면 다시 나를 돌아보게 된다. 나보다 잘 사는 이가 부럽다는 생각들이 일시에 사라지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하는 생각이 마음에 자리하게 된다.


홍산공원에는 홍산보탑(진용탑)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못된 용이 우루무치에 홍수를 가져와 이를 제압하는 탑을 쌓은 것이라 했다. 지금은 사랑하는 남녀가 용에게 자신들의 사랑이 영원하게 해 달라고 비는 자물쇠가 엄청나게 매달려 있었다.

 

[ 임칙서의 상이 홍산탑에서 내려다 보인다. 그 앞으로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

 

그리고 '아편으로부터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광동성에서 영국 상인들로부터 압수한 아편을 20여일 동안 태워버린 청나라 대신 [임칙서]의 석상이 있었다. 임칙서는 그 일이 있은 후 카자흐스탄으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진정한 애국자는 정당한 옳은 대접받지 못하는가 보다.


우리는 우루무치에서 여행의 피로를 발 마사지로 풀었다. 그리고 이른 저녁을 먹고 북경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갔다. 저녁 7시 25분 비행기를 타면 북경에 밤 12시정도 도착할 것이라 했다. 험하다는 실크로드여행은 아무 탈 없이 여기까지 잘 마쳤다.


하지만 사람의 앞일은 누구도 모른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북경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공항 출구를 벗어난 후 우리 앞에 놓인 오늘밤 일을 감히 누가 안단 말인가?

우리가 공항 대합실 귀퉁이에서 추위에 떨며 국제미아가 될지,

아니면 따끈한 호텔 방에서 편안히 단잠을 이룰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인생은 그 누구도 모르는 길을 걸어가는 호기심 가득한 여행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