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새 난리를 치고 천진 공항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나는 우선 북경에서 일어난 사건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이해한다.
여행사 책임자는 우리가 우루무치에서 '오늘 밤12시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내일 도착하는 걸로 본사에서 연락이 왔다.'라는 말을 자꾸 했다. 서울의 본사와 북경의 지사가 서로 다른 일정표를 가지고 운영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일이 꼬인 진짜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가 시간 약속을 할 때, 특히 신강위그루 자치지역에서는 「'내일 혹은 내일 모레'란 말을 쓰면 안 된다. 북경시간과 헷갈려서 서로가 실수한다 반드시 '몇 월 몇 일 몇 시'라고 해야한다.」라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중국의 정책 때문에 불거진 일이다. 우루무치는 북경보다 두 시간이나 늦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서는 자신들의 통치 하에 두려고 북경 시간을 사용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아침에는 거의 9시가 되어야 해가 뜨고 저녁에도 거의 9시가 되어야 해가 진다.
특히 우리가 도착한 시간은 하루가 끝나기도 하고 시작되기도 하는 자정이 아닌가. 그러다 보니 우리가 도착하는 날짜가 하루 헷갈린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면 여행사는 우선 여행객들에게 그 이유를 설명하여 안심시키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이다. 경험이 부족한 여행사라서 그 대처가 약간 늦었을 뿐이다. 물론 이 사실은 그냥 나 혼자 눈치로 짐작하는 것일 뿐 확실하지는 않다.
[왼쪽부터 한자, 영어, 한글, 러시아어,...그리고 일어로 공항 출국장에 씌어진 안내판.]
중국을 여행하며 우리나라의 위상이 정말 많이 높아졌음을 느꼈다.
북경 공항 출입국장에 벽에는 [공지사항]이라고 한글로 씌어진 안내판이 있었다. 그것도 두 번째로 말이다. 거기다가 어지간한 관광지에서는 한글 안내판이 있었다. 한창 일본 사람들이 중국을 들락거릴 때는 온통 일어로 씌어지던 것이 이제 한글이 우선으로 적혀있다는 것은 보는 우리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화장실 변기 앞에는 '한발 앞으로'라는 이런 슬로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88올림픽 이후 달라진 것처럼 중국도 북경 올림픽을 전후하여 화장실 문화가 많이 달라졌다. 도시의 공동화장실은 정말 깨끗해졌다. 우스운 것은 소변기 앞에 붙여놓은 슬로건이었다. '향전일소보(向前一小步) 문명일대보(文明一大步) : 소변기 앞으로 한발 나아가면, 문명은 크게 진보한다'는 것이다. 화장실에서 이 문구(文句)를 자주 보았다.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습관이나 문화는 습지(濕紙)가 잉크를 먹는 것과 같다. 서서히 그리고 차츰차츰 번져나가는 것이 문화다. 모르긴 해도 아마 중국 전체가 변하려면 상당한 시간, 아니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어쩌면 중국의 오지까지 이런 변화가 번지려면 요원한 일인지도 모른다.
[제법 큰 호텔 식당에서 손님에게 내놓는 국자가 이렇게 구부러지고 지저분한 것이 중국인 걸 어찌 쉽게 바로 고칠 수 있을까?]
소련 연방이 무너질 것이란 걸 예견한 학자들 가운데 가장 정확하게 내다본 원인은 지리적 조건도 아니고 민족간 갈등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정신세계 즉 종교였다. 그러면 거대한 나라 중국의 장래는 어떨까? 지금 개혁개방으로 한창 경제가 발전하고 있는데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는가 싶겠지만 큰 댐도 작은 구멍 하나로 시작하고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국이 만약 분열이 일어나 소련처럼 무너진다면 그 원인은 어디에서 불거질까? 한번 생각해 봄직하다. 나는 감히 예언한다. 소련과 마찬가지로 종교적 갈등일 것이다. 사실 종교는 마약보다 더 무섭다. 신강자치구는 위그루족들이 이미 지난 해 한번 독립을 선포하여 중국 당국의 골치를 썩힌 적이 있다.
그런데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중국의 한족과 위그루족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종교의 문제인 것이다. 아마 모르긴 해도 머잖아 신강자치구는 티베트지역 보다 먼저 불거질 소지가 있다. 아마 이런 것을 우려한 나머지 중국의 공산당은 신강자치구의 시간 마저 북경의 영향 아래 두고 있을 것이다.
결국 그런 것이 빌미가 되어 우리는 늦은 밤 공항 대합실에서 난리 굿을 하는 일이 생기고.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묵호 항 』에는 나쁜 도치가 있습니다. (0) | 2011.03.05 |
---|---|
『 민족의 영산(靈山) 태백, 그 눈길을 걷다 』 (0) | 2011.02.28 |
『 실크로드 - 소문보다도 더 험한 길 』---(9) (0) | 2010.05.29 |
『 실크로드 - 소문보다도 더 험한 길 』---(8) (0) | 2010.05.28 |
『 실크로드 - 소문보다도 더 험한 길 』---(7) (0) | 2010.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