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제단에서 문수봉 쪽으로 내려다 보는 경치는 한 폭의 명화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아무리 구경거리가 많고 좋은 여행이라도 새벽잠을 설쳐가며 길을 떠나는 것은 청승맞은 일이다.
「태백 눈꽃 축제」,
혼자 몇 번을 다녀온 미안한 마음에 집사람과 함께 새벽 5시에 일어나 대충 얼굴을 씻고 서둘러 택시를 탔다. 동대구 출발 6시 20분, 강릉행 무궁화호. 함께 가는 여행객들은 모두 29명, 모르긴 해도 우리 부부가 제일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무신날(수요일) 이렇게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적다. 그 만큼 대우를 받는다. 텅 빈 객차에 우리만 타고 가로등만 졸고있는 잠든 도시를 가로질러 달리는 기차여행은 나름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들었다. 방학을 한 초등학생과 중학생 예닐곱 명이 부모를 따라 함께 갔는데 들뜬 기분에 많이도 설쳐대고 떠들었다. 말이 부모와 함께 하는 여행이지 부모들이 아이들과 대화를 나눈다거나 행동을 함께 하지 않는 무질서한 여행이었다. 하도 시끄러워 아예 MP3를 꺼내 귀에다 대고 창밖에 스치는 경치에 빠지려 애를 썼다.
[차창 밖에는 숙천을 지나는 철길이 새로이 하늘을 가로질러 있습니다...마치 비행기를 탄 기분으로...]
첫 정차 역인 하양 역은 젊은 날 십 년을 통학한 기찻길이다. 많이도 변했다. 대구 선이 바뀐 것도 그렇지만 그렇게도 커 보이던 메타세콰이어가 왜 그리 초라한지. 거기다가 열차의 속도는 그 옛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한 시간이나 걸리던 길을 겨우 십 칠팔 분만에 도착하였다. 정확히는 몰라도 정차역도 하양, 영천, 화본, 탑리,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춘양, 현동, 승부, 뭐 그 정도에서 철암 역에 도착하였다.
[달리는 차창밖으로 강원도 특유의 경치를 맛볼 수 있습니다...!]
계절이 지나가는 길목에는 밤에는 겨울이 설치다가 낮에는 봄이 발을 들이밀고 들어가도 되느냐고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음지에는 잔설이 피부병을 앓는 후미진 구석이고 양지는 따뜻한 낮잠이 스멀거리는 산골이다. 어차피 하루 낮만 지나면 그저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갈 단체는 인사도 나누지 않고 슬금슬금 눈치만 보며 가이드의 주의사항을 들었다. 제2주차장에 오후 4시 50분까지 모이라는 것, 그리고 시간을 놓치면 택시를 타고라도 철암 역에 6시 20분 열차를 타러 오라는 것이 다였다. 집사람과 함께 물 한 병을 사서 태백산을 오르는 초입으로 용감하게 나섰다.
태백산 천제단을 오르는 길은 크게 네 가지다.
당골 매표소, 백단사 매표소, 유일사 매표소, 사길령 매표소, 이렇게 매표소가 네 군데다. 그 중 유일사 매표소로 가는 길이 가장 최단이고 경사도 대체로 완만하다. 하지만 우리가 내린 주차장은 당골 광장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등산로다. 당골 매표소와 천제단까지 거리는 약 4.4Km이고 그 절반이 되는 반재까지는 대체로 완만하고 망경사 이후에는 아주 급경사이다. 보통 소요시간이 2시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4시간 정도의 여유를 가지고 등산하는 것이 좋다.
안내서에 보면,
「태백산은 험난하지 않고 경사가 완만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등반할 수 있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의 주목이 자생하고 있는 영산(靈山)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나라의 평온을 빌었던 곳으로 천제단, 문수봉 등 유적과 초고지대의 샘인 용정, 철쭉, 눈꽃, 해돋이비경 등 많은 볼거리가 있다.」라고 했지만 실제로 등산을 해보면 그렇게 호락호락한 등반길이 아니다.
천제단은 높이가 해발 1560m이고 바로 옆에 장군봉이 1566.7m 최고봉이며 무수봉이 1517m이다. 벌써 천 오백이 넘으면 동네 뒷동산처럼 생각하면 안 된다. 물론 요즘은 모두 히말라야등반대 뺨치는 복장으로 차리고 나서지만 비싸고 화려한 복장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겨울철에는 아이젠, 지팡이. 여름에는 충분한 물을 꼭 지참하는데 더 신경을 써야한다.
[절반 거리의 반재, 바로 아래는 급경사였습니다...!]
오랜만에 올라가는 산, 그것도 급경사를 오르다보니 예상보다 더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저 천제단 꼭대기에서 두어 장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거의 4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점심밥을 먹는 시간 20여분 외에는 쉬는 시간도 거의 없었는데 말이다. 아마 눈밭에서 먹는 점심이 너무 맛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는지도 모른다. 집사람이 준비한 카레 밥은 야외에서 정말 꿀맛이었다. 거기다 김장 김치까지 곁들여 말이다.
[산에서는 무엇이나 진수성찬이 됩니다. 특히 우리는 김치가 제일 중요합니다...!]
친구들과 갔을 때는 바람이 너무 불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삼켰는데 따뜻한 햇볕 속에서 집사람과 함께 하는 점심은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느긋하게 점심을 먹고 천제단을 올랐을 때 인근 공군부대에서 온 병사들이 사진을 직고 있었다. 우리도 그 병사의 도움으로 바위에 태백산이라 휘갈긴 멋진 글씨를 뒤로하고 사진을 찍었다. 햇빛도 좋았지만 병사의 사진 솜씨가 좋아서 멋지게 나왔다.
[어느 병사가 찍어준 기념사진, 아직 생생한 얼굴이다...]
잠시 머물지도 못하고 서둘러 망경사 쪽으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도중에 단종비각이 있었다. 올라갈 때는 그저 앞만 보고 올라가는데 신경을 쓰다보니 미처 볼 여유도 없이 지나쳤다가 내려오는 길에 둘러보았다. '단종비각'이라고 한자로 씌어있었다. 그 글자가 황금색이었다. 즉위는 하지 못했어도 임금이란 의미다. 역사에 만약이란 통하지 않는다지만 즉위를 했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본다. 비각 앞에는 누가 놓고 갔는지 웨하스 한 봉지가 달랑 놓여있었다.
[천제단 등산로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단종비각. - 아무도,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내려오는 길은 쉽고 빠르다.
하지만 위험이 따른다.
올라갈 때 쓰던 근육과 다른 근육을 쓰기 때문에 더 어렵다. 그래서 얼마 내려오지 않아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내려올 때 더 조심하고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몸을 낮추면 세상에 거슬릴 일이 없다.
우리가 제2주차장에 내려왔을 때 시간은 오후 4시 조금 지나서였다. 일행은 모두 버스에 올라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일찍 왔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가.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천제단 꼭대기까지 등반을 한 사람은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들은 눈썰매를 타면서 하루를 보내고 몇몇 어른들은 조금 오르다가 반재 아래의 삼거리에서 돌아왔다는 것이다. 혹 다른 이들이 나이 먹고 늙어가며 주책이라는 듯 바라볼까 얼른 차에 오르고 말았다.
야간 열차는 별 재미가 없다.
간간이 보이는 한 두 개 불빛을 보면서 차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이 지루하다. 기차여행이 편하고 재미나니 다음에는 기차로 남도를 돌아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이런저런 계획을 나누다보니 환한 도회의 불빛이 동대구임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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