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이빗 폭포 - 물은 거의 없고 지하로 떨어지는 소리만 약하게 들렸습니다... ]
난민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데이빗 폭포'가 있다. 여기서 가깝다는 건 걸어서 채 오분도 안 걸리는 거리란 말이다. 어지간한 관광지는 버스로 일여덟 시간을 달려갔는데 작은(인구 백만) 포카라 도시 내에서 관광을 하니 그렇다.
폭포의 원래 이름은 '파탈레 츠항고(Patale chhango)였는데 스위스 사람, 데이빗 부부가 이곳에서 급류에 휩쓸려 부인이 죽었단다. 그래서 이름이 데이빗 폭포라 불리게 되었단다. 가뭄이 심해 물은 거의 말랐고 거친 역암이 수마에 닳아 골이 진 지하 구멍을 해골같이 드러내고 있었다.
한창 구경을 하면서 둘러보고 있는데 여행 팀에서 제일 연세가 많은 노인이 넘어졌다. 풀밭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느 정도의 탄력이 있는 흙도 아닌 순전히 바위로 된 계단에서 넘어지며 팔꿈치를 다쳤다.
대체로 앞장서 '잘 지내자'고 말을 하는 사람은 말이 그렇다는 것이고 현실은 스스로 한 말을 지키지 못하거나 아니면 허세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마치 깡패들이 등에다 '착하게 살자.'라며 문신을 새겨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자신은 착하게 살려고 하는 데 다른 사람이 자꾸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해서 싸움을 하게 된다며 그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고 만다는 말이다.
이번 여행 팀에서 칠순이 넘어 가장 연배가 높은 그 분이 그랬다.
'앞으로 함께 여행을 하게 되었으니 한번 잘 해 봅시다.'며 남도 특유의 걸쭉한 목소리(실제로 좀 알아듣기 힘든 허스키한 소리)로 제안을 했다. 그런데 그 분이 노구에 힘이 부치는지 버스가 달리면 금세 졸다가 관람을 할 때는 딴전을 피었다. 날이 더운 탓도 있었지만 종교 문제도 가미되어 불교문화권에서는 아예 손사래를 쳤다. 심지어 사원에서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월남전 참전 용사라며 객기를 부리다가 또 태권도 협회의 무슨 높은 자리에 있다며 자랑을 하기도 했다.
결국 데이빗 폭포에서 일을 내고 말았던 것이다. 발을 헛디뎌 팔꿈치 부분을 크게 다쳤다. 걱정이 되어 살펴보았더니 팔꿈치 밖으로 달걀 두어 개 정도로 부풀어올라 있었다. 말은 안 해도 내부 출혈이 심했다. 하지만 '이 정도 가지고 뭘, 죽지는 않아.'하며 그 특유의 객기를 보이는 것이었다. 안부를 물어본 내가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그저 조용히 아프다는 말만 했더라도 가지고간 소염제라도 드리고 찬물로 지혈이 되게 해 주었을 것인데 워낙 큰소리를 치기에 가이드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다시는 안부를 묻지 못했다. 결국 그 날 오후 늦게 포카라의 작은 병원에서 피를 뽑고 안정을 취했다. 나도 그렇지만 노인들은 혈액순환제를 먹으니 지혈이 잘 되지 않아서 더 크게 부풀었던 모양이다.
단체 여행이란 인정사정이 없다.
다친 사람은 다친 것이고 소화해야 할 일정은 또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버스로 잠시 가자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 페와 호(Phewa Tal)가 나왔다. 포카라라는 도시의 이름이 원래 포카리, 네팔의 말로 물이란 뜻이었단다. 그런데 나중에 아름답게 부르기 위해 포카라가 되었단다.
히말라야의 설산(雪山)에서 흘러내린 맑은 물이 만든 호수지만 속세 인간들의 욕심이 우러나 손을 담그기도 망설여지는 정도로 오염되어 있었다. 거기다가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위태로운 작은 보트를 탔다. 후진국일수록 안전에 대한 불감증은 심하다. 삼십 여분동안 그저 보트난간만 부여잡고 뒤집힐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마음 속으로 그려보며 얼른 이 위험한 뱃놀이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작은 배에 4명씩 탔다. 뱃전에 거의 물이 찰랑찰랑 거릴 정도였으니 위험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
호수 중앙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었지만 우리는 바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호텔로 왔다. 호텔로 오는 길에는 식당과 상점이 줄지은 가운데 한글로 간판을 내건 집을 두엇 발견할 수 있었다. '낮술', '서울 해장국'등 재미난 이름들이었다. 이제 세상 어딜 가나 우리나라 사람이 끼어있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았다. 그만큼 나라의 위상이 높아지고 발전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 정말 맑고 순수한 눈을 가진 사람들이 바로 네팔 사람들이 아닐까? 이들의 웃음에는 행복이 보인다... ]
오는 길에 네팔인 가족 여행객이 우리를 보고 사진을 함께 찍자고 한다. 손자처럼 보이는 어린이가 무척 귀여웠다. 아내는 어린이를 안고 나는 옆에 서서 함께 사진을 찍으니 그들도 자기들의 사진기로 찍은 후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주 호의적이었다. 사실, 우리가 현지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그들이 먼저 원하니 더 바랄게 없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우리 부부가 잘 나서 그런가? 아니면 다른 무슨 꿍꿍이가 있는가?
별 생각을 다했다. 하도 궁금해 가이드에게 그들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가이드 말로는 사진을 가지고 가서 외국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고 주위에 자랑을 하려고 그런 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지금 네팔에 있고 그들 네팔 사람들에게는 외국인인 것이다. 현지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 걸 둘러보고 아무데나 돌아다니고 할 만큼 모든 걸 잊고 편했던 것이다. 이렇게 네팔 사람들은 순수하고 솔직하며 아름답다.
오늘 그들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다.
우리 마음에 들어와 기억의 가장자리에 걸터 앉는다.
그리고 이번 여행, 아니 우리들 삶의 아름다운 추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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