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인도(India) - 모든 걸 드러내놓고 사는 나라 』---(6)

일흔너머 2011. 7. 12. 15:06

 

                [ 에로틱 사원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맞이하는 서부 사원들 편의상 이보다 오른쪽으로 있는 사원을 동부 사원이라...]

 

여행 7일차.(2011. 06. 05. 日)
여행 중 휴식은 좋은 것이다.
카주라호에서는 바라나시보다 더 좋은 호텔에서 여유를 가지고 휴식을 취했다. 아침 식사도 더 맛있게 느껴졌다. 처음 '카주라호'란 말을 들었을 때 큰 호수가 있는 도시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지방에서 많이 생산되는 대추야자(카주르)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약 천 년 전에는 찬델라 왕조의 수도이기도 해서인지 여든 개 이상의 사원이 있었단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에 의해 많은 사원이 파괴되고 현재 스무 개 정도의 힌두교 사원과 자이나교 사원이 존재한다.


오늘 우리의 관심은 '에로틱 사원'이다. 고대 인도의 성애(性愛)에 관한 서적, '카마수트라( 카마:성애, 수트라:교범 )'를 바탕으로 지어졌다는 설이 있는 사원이다. 수많은 작은 조각으로 이루어진 자이나교 사원이다.
사원의 입구에서 왼쪽으로 서부 사원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동부 사원이다.


우선 서부 사원으로 발을 옮긴다. 버스 안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대단한 날씨다. 섭씨 45도, 한번도 이런 날씨를 경험해 보지 않아서 그런지 숨이 턱턱 막힌다. 아침인데도 땅은 어제의 열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아랫도리를 휘감는다. 사원을 관람하러 들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야 하는데 발바닥에 따가운 열기가 그대로 전달된다.

 

              [ 락스마나(Lakshmana)사원 벽면은 아름답고 세밀하고 정교한 조각들로 가득 차 저절로 사진을 찍게 만든다...]

 

사원의 안팎으로 벽이란 벽은 모두가 흔히 말하는 '미투나(Mithuna)'란 작은 조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일이 하나하나 다 들여다본다면 온종일 구경을 해도 모자랄 정도다. 미투나는 성적 욕망을 자극하는 선정적이고 에로틱(erotic)한 여인의 풍만한 신체 또는 성행위 등을 아름답게 조각한 종교예술(宗敎藝術)이다.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벽면에 새겨진 조각상들을 사진으로 담아와 지금도 그때 여행의 즐거움을 되새기는 것을 생각하며 어차피 날씨는 덥고 일일이 보기가 어려운 일이니 사진으로 남겨 나중에 차근차근 살피리라는 속셈으로 무턱대고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사원 전체는 제대로 담지 못해 지금 오히려 후회가 된다.


에로틱 사원이라고 하여 많은 성희의 조각들만 있을 것이란 예상과는 달리  1986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다양한 당시의 생활상이 구석구석에 조각되어 있었다. 눈썹을 그리는 여인, 발바닥에 헤나로 문신을 그리는 여인, 머리를 빗고 있는 여인, 거울을 보고 있는 여인, 요가를 하는 이, 그리고 특히 어린아이가 많았다.
모든 조각들이 그저 원시적으로 한 그런 조각이 아니라 정교하고 현대적 감각이 살아있는 아름다운 조각상들이었다. 다만 원래대로 보존되지 못하고 군데군데 파손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 놓아도 훌륭한 조각들, 빈틈없이 조각되어 있어 어느 것을 먼저 봐야할 지 모를 지경이었다...]

 

서부 사원군을 돌아보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경내에 있는 매점에서 가이드가 시원한 물을 준비해서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누군가 말했지만 말을 타면 종을 거느리고 싶다. 사람들은 항상 더 깊은 쾌락을 원한다.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시니 이보다 더 맛있고 시원한 것은 없는가를 찾게 된다.


사실 말이 났으니 하는 말이지만 인도에서는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상쾌할 정도의 시원한 음료는 없었다. 전기 사정 탓인지 몰라도 냉장 상태가 그렇게 속 시원하지 않았다. 가이드에게 내가 한 턱 낼 테니 정말 시원한 음료를 우리 여행팀 모두에게 한 병씩 돌리라고 얘기를 했다. 그렇잖아도 가이드가 음료를 싸 준다고 돈까지 거두었으니 자기 돈이 들지 않으니 좋아라며 휴게소로 가더니 몇 가지 음료를 가지고 왔다.

 
그 음료 중에 '림카(Limca)'가 있었다.

코카콜라회사에서 만든 청량음료인데 레몬 맛이 강하고 톡 쏘는 것이 열대의 더위에는 제격이었다. 평소 탄산음료를 금했는데 이때부터 나는 인도의 림카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늘에 앉아 쉬었겠다. 거기다가 시원한 음료수도 마셨겠다 이제 다음 동부 사원을 관람하러 가야한다. 그런데 아니었다. 더위에 지쳤던 몸이 시원한 음료수에 호강을 하자 다들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그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쉬었으면 힘이 나서 벌떡 일어나야 하지만 아니었다. 이제 웬 만큼 관람을 했으니 날도 더운데 그만 돌아가자는 것이다.

 
하긴 때가 벌써 점심나절이 다 되었고 모두가 지쳐있었다.

결국 동부 사원을 눈앞에서 포기하고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고 말았다. 누가 인도 여행을 준비중이라면 한마디 충고를 할 것이다. 하루라도 젊어 힘있을 때 떠나라. 아니면 충분히 체력을 키워 떠나라.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구경도 코앞에서 놓치고 만다.


우리는 점심을 먹고 바로 '아그라'행 기차를 타기 위해 '잔시'로 갔다. 카주라호에서 잔시까지는 버스로 네댓 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기차는 오후 여덟시 반 출발이었다. 넉넉한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구경을 하며 간다. 한참을 달려가다가 버스가 섰다. 인도의 시골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가 직접 보고 싶다는 말에 차를 세운 것이다. 밖으로 한 발 내밀자 안에서 느끼지 못한 열기가 확 달려든다. 숨이 턱턱 막힌다. 밖에는 곧 다가올 우기(雨期)에 맞서 마지막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 아이들은 과자 하나에도 열광을 한다. 다음에 누가 인도에 간다면 더 많은 선물을 준비하라고 권하고 싶다.. ]

 

우리가 내려 길을 건너자 한 떼의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왔다. 우리는 인도의 아이들과 또 마을을 둘러보고 아이들과 마을 사람 몇몇은 또 우릴 쳐다보고, 누가 누굴 구경하는지 모르겠다. 가지고 간 과자를 아이들에게 내밀자 바로 혼란이 일었다. 결국 줄을 세우고 순서대로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과자나 볼펜을 더 가져올 것을 그랬다 후회되었다.


 

한참을 둘러보다가 학교에서 일을 본다는 사람을 만났다. 부인은 선생님이었다. 자기 집을 보여 주었다. 아마 마을에서 제일 잘 꾸며진 방일 것 같았다. 가전제품도 눈에 띄고 지금껏 우릴 따라다니던 제일 똑똑한 아이가 그 집의 아이였다. 한국 사람, '노 봉두'라는 화가가 몇 달을 이 집에서 머무르며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아이는 우리에게 '빤짝빤짝 작은 별'을 불렀다. 그 화가가 가르쳐 주었단다.

 

              [ 우리를 자신의 방으로 안내하여 부부가 함께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으라고 포즈까지 취해주었다. 아름다운 부부였다..]

 

인도를 다니며 한국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정말 많이 한다는 걸 느낀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위상이고 국격(?)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것처럼 무슨 정상회담을 하고 어쩌고 해서 높아지는 것이 국격이 아니라 진정한 나라의 품위는 여행자들이 해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만들어 내는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참을 둘러본 우리는 무심코 마을을 떠난다.

그저 '세상에는 이런 곳도 있구나'하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하지만 우리가 떠난 그곳에는 지금도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힘겹게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