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인도(India) - 모든 걸 드러내놓고 사는 나라 』---(9)

일흔너머 2011. 7. 20. 15:05

                [ 아그라 성 오른쪽 담이 바로 해자로 떨어지는 걸 막는 담이다...]

 

있을 때는 몰랐다.
경내를 돌아다니고 쉴 때는 타지마할의 마력에 푹 빠져 아무 것도 몰랐다. 그런데 버스를 타고 아그라 성으로 떠날 때 비로소 타지마할, 그 마력에 빠진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몸은 아그라 성을 향해 떠나가는데 눈은 자꾸만 타지마할 쪽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그라 성을 둘러보는 내내 나도 모르게 타지마할 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이게 바로 타지마할의 매력인가? 아니면 아들에게 배신당한 황제 '샤자 한'의 슬픈 말년이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때문인가?

                [바로 앞에는 해자로 둘러 싸이고 현대식 자동차 도로와 야무나 강, 그리고 멀리 타지마할이 조용히 누워있다....]

 

사람은 누구나 미련이라는 걸 가지고 산다.
'그 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걸'하며 후회하고 다시 그와 같은 경우가 오면 꼭 이렇게 하리라 다짐을 한다. 하지만 살면서 똑같은 그런 경우가 오지 않을 뿐 아니라 설사 그런 경우가 다시 찾아오더라도 한때 다짐하던 일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쉬 잊어버리고 똑같은 실수를 또 저지른다. 모르긴 해도 이것이 인간의 삶이다. 나도 그랬다. 이럴 줄 알았으면 타지마할에서 더 찬찬히 둘러보고 요즘 흔히 말하는 발품을 더 팔아 사진이라도 많이 찍어둘 걸하고 후회를 했다.

 

아그라 성은 타지마할의 북서쪽, 야무나 강을 따라 십여 분 달려가자 나타났다. 무굴 제국 제3대 악바르(Akbar) 황제에 의해 만들어진 붉은 사암 성벽이다. 전쟁을 위해 견고한 이중 성벽으로 둘러싸인 성, 그러나 내부는 대리석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아름다운 궁전이었다.

                [ 입구에는 경계가 삼엄하다고 해야할 정도로 군복을 입은 사람이 일일이 검사를 했다. 상상외로 성은 컸다...]

 

입구에는 많은 장사치들이 진을 치고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해자(垓字)는 갈수기라 물이 말라 있었지만 그 높이와 깊이 만으로도 적으로부터 방어가 충분히 가능한 장애물이었다. 가이드 말로는 적이 쳐들어오면 위에서 둥근 바위를 굴려내려 좁은 길에서 피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했다. 그만큼 성으로 올라가는 경사가 급했다.

 

해자를 지나면 높은 성벽을 뚫고 우아한 아치형의 커다란 입구가 나온다. 왕(Singh)만을 위한 '하티폴(Hathi Pol)' 혹은 '코끼리 문(Elephant Gate)'이라 불리는 성문이다. 지금은 물론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되어 과거의 왕이 코끼리를 타고 들어오는 광경이 어떠했을까 상상할 수 있었다.

 

성안에서는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있지만 비디오는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잘 하자'는 그 노인은 비디오를 꺼내들고 자랑하며 또 객기를 부렸다. 평소 잘 찍지도 않던 비디오를 경비원이 보는 앞에서 일부러 들고 설치다가 결국 벌금을 하게 되었다.

 
자기 개인 돈으로 벌금을 했으면 까짓 누가 불평을 할까만 '포터 팁', '카메라 피'로 쓴다고 단체로 거두어 둔 돈으로 가이드가 지불했다. 시끄러운 말썽이 없도록 가이드는 얼른 꺼내 지불했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여행 내내 한번도 비디오를 찍는 것을 보지 못했다. 정말 못 말리는 객기였다. '천성을 고치는 약은 없다.'고 누가 그랬다. 정말 맞는 말이다.


                [ 말이 성이지 어지간한 궁궐이었다. 그 규모도 대단했지만 모든 곳이 화려한 제국의 위용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그라 성은 상상외로 컸다. 우리가 지친 탓도 있지만 더운 날씨에 모든 걸 둘러보기에는 몸이 허락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붉은 사암은 더위에 지친 우리들에게 더욱 뜨겁게 느껴졌다. 가이드는 이 건물이 환기가 잘 되도록 이렇게 또 저렇게 지어졌다고 했지만 에어컨에 익숙한 우리는 시원한 구석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당시 벽이 모두 보석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었는데 식민지로 있을 때 영국인들이 모두 떼 갔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물론 아직도 군데군데 반짝이는 보석이 남아 있어서 과연 모두가 그대로라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이 되었다.

 

                 [ 오석의 오른쪽에 금이 보인다. 그리고 멀리 아치 문 왼쪽 위에 작은 구멍이 검게 보인다...! ]

 

야무나 강을 멀리 내려다 볼 수 있는 높은 곳에는 황제가 앉아 외국의 사신들을 맞는 연회장소가 있었다. 까만 오석(烏石 : Black Shale)으로 만든 단상이 황제의 자리라고 했다. 그 단상에는 깨어져 금이 나있었다. 영국군이 쳐들어 왔을 때 쏜 포탄이 이 단상에 맞고 튀겨져 나가 궁전 벽을 뚫었다는 것이다. 물론 벽에는 제법 큰 구멍이 있었다. 구식 포탄이 뚫고 나간 구멍, 상상이 되었다.

 

서구 열강이 한창 식민지 정책으로 설쳐대던 근대 이야기다. 하긴 지금이라고 다를 바 없다.

영국이 신사의 나라? 웃기는 이야기다. 힘이 없어 그렇지 힘만 있으면 언제 무슨 짓을 할지 누가 알겠나? 독일이 그렇고 소련이 그랬다. 일본이 설치다가 그들 말대로 '야코(기)'가 죽은 것은 자국의 경제와 정치 때문이다. 독도가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지 않는가. 언제 또 울릉도 또 경상도를 내 놓으라 할지 누가 알겠는가?

 

중국은 또 어떤가?

한때 서구열강의 목표물이었다가 지금은 큰 국토와 인구 그리고 경제력으로 올챙이 시절을 잊고 주변국가들에게 그 서구열강이 하던 짓거리를 하고있다. 이처럼 문제는 언제나 힘이다.


힘이 없으면 빼앗기고 종이 되는 것이다.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정글이다. 약육강식의 이론이 존재하는 그 정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