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인도(India) - 모든 걸 드러내놓고 사는 나라 』---(11)

일흔너머 2011. 8. 3. 12:06

 

                [ 상상을 초월하는 해시계가 넓은 공원에 띄엄띄엄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인도의 문화를 보는 좋은 자료입니다.]


암베르성을 둘러보는 데 지친 일행은 더 이상의 일정을 소화하기가 힘들었다.

자이푸르로 돌아와 하와마할,  '바람의 궁전(Palace of the Winds)'이라는 아름다운 건물을 둘러보기로 했지만 말 그대로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버스를 타고 차창 밖을 가리키며 잠깐 스쳐 지나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버스 안은 천국, 아름다운 바람의 궁전이 있는 밖은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지옥이었다.

수 천리를 달려와서 여행을 한답시고 하는 것이 결국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다들 체력이 달려 이렇게 된 것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말이 이럴 때 정말 맞는 말이다.

 

우리는 자이푸르 시내 주차장에 버스를 세우고 '잔다르 만다르 천문대'를 찾았다. 잠시 걸어 도착한 천문대는 정말 눈을 의심할 정도로 규모가 대단했다. 우리나라의 해시계, 물시계, 모래시계는 그저 장난감이다. 천문학을 공부한 입장에서 이렇게 크고 정교하게 만든 해시계를 보고 감탄했다. 저렇게 크게 만들면 확대가 되어 정확한 시간을 측정할 수가 있구나하고 말이다.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엄청난 해시계였다.


 

                [ 큰 해시계의 눈금이 분 단위에서 거의 초 단위까지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정확한 규모였습니다...! ]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평균태양시가 아니고 시(진)태양시지만 지방시로서 이렇게 정교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평균태양시를 사용하는 우리의 시계와는 오차가 있지만 하늘에 보이는 태양, 즉 그 지방의 시간과는 너무 정교하게 맞아 분이 아니라 초 단위까지 측정이 가능한 그런 해시계였다.

 
하지만 더운 날씨 탓에 일일이 둘러보지 못하고 나무 그늘을 찾아 레인맨 형제가 사준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지친 몸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다. 북위 27도의 자이푸르, 우리나라 북위 35도의 더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거기다가 곧 다가올 우기를 앞두고 마지막 기승을 부리는 내륙의 찌는 듯한 더위다. 여행 전에는 '우기로 접어들어 비가 많이 오면 어쩌나'하고 비를 걱정했는데 막상 앞에 닥친 것은 40도를 넘나드는 더위였다.

 

               [ 시장을 지나치다가 우리의 뻥튀기 같은 주전부리를 파는 걸 보았습니다. 하지만 워낙 더워 맛을 볼 엄두를 내지... ]

 

오후 일정에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기로 되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체력이 있는 분은 시내 관광을 해도 된다며 가이드는 버스 차창 밖의 맥도날드 가게와 과일가게, 그리고 호텔과의 거리등을 일러주었다. 집사람과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점심을 먹고 곧장 방에 들어와 에어컨이 시원하게 나오는 쪽으로 침대를 돌리고 오랜만에 정말 긴 낮잠을 잤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상관하지 말자고 모든 걸 버리고 잠에 빠졌다.


그런데 저녁을 먹으려고 식당에 내려가니 우리가 잠든 사이에 엄청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여행사 직원과 함께 처음 만난 노부부였는데 이분들이 과일을 사러 나갔다가 길을 잃은 일이었다. 여행에서 함께 하는 일행은 중요하다. 하지만 여행의 동반자와 너무 가까워지는 경우 여행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해서 그저 인사나 나누고 약간의 도움을 주는 것으로 스스로에게 울타리를 친다.

 
부인이 네 살이나 많은 노부부는 항상 손을 잡고 다니고 애정 표현을 너무 야하게 하는 것 같아서 조강지처는 아니리라는 짐작을 했다. 집사람은 그 노부부를 '불륜의 칠십 대'라고 불렀다. 사람마다 보는 눈은 같은가 보다. 젊은 사람들은 이 노부부를 '핸드 부부'라 했단다. 손을 항상 잡고 다닌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노부부가 과일을 사러 밖에 나갔다가 길을 잃은 것이다.

이 더운 날씨에 과일을 사러 나가다니 십 년이나 젊은 우리도 내키지 않는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지만 과일을 사고난 뒤가 문제였다. 부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고 했고 대개의 남자들이 다 그렇듯 남편은 왔던 길보다는 지름길로 가자고 했단다.

 

               [인도하면 터반과 피리와 코브라, 하지만 그렇게 흔히 볼 수는 없었습니다. 암베르 성 구석에서 겨우 만났습니다.]

 
항상 그 지름길이란 것이 문제다. 다소 가깝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자기 생각이고 번화한 길에서 몇 번만 부딪히고 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결국 얼마 되지 않는 호텔까지 돌아오는 길을 잃고 만 것이다.


상황을 안 봐도 뻔하다. 그냥 호텔에 있을 걸 부인이 자꾸 꼬드기는 바람에  억지로 나갔다가 길을 잃고 짜증이 난 것이다. 날은 덥지, 말은 통하지 않지, 거기다가 부인은 예의 그 날카로운 소리로 핀잔을 해 댈 것이고 이국만리에서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인도는 어지간하면 영어가 통한다. 하지만 이 핸드부부는 칠십 노인들이다. 영어를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급기야 가이드가 준 명함을 가지고 손짓 발짓으로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가이드의 전화번호로 연락이 되어 가까스로 호텔까지 올 수 있었다.


이야기를 이렇게 하니 쉽지 두 노인은 일생일대의 위기를 맞이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벌렁거린다고 했다. 우리가 느지막이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가서 노부부를 만났을 때 그 다정스런 핸드부부는 서로를 탓하며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있었다.

 

다들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정작 본인들에게는 웃을 일이 아닌 위기의 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평생 이야기해도 다 못할 큼지막한 추억을 간직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