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인도(India) - 모든 걸 드러내놓고 사는 나라 』---(14)

일흔너머 2011. 8. 11. 13:30

 

                [ 무엇이 즐거운지 항상 표정이 밝은 인도의 아이들은 행복해 보인다...부사발 역전에서 ]

 

여행 11일차.(2011. 06. 09. 木)
달리는 기차에서 아침을 맞는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서 있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 기차다. 잠시 가는가 하면 서고 또 서 있는가 하면 간다. 어쩌다가 뒤로 갈 때도 있다. 우리나라 같으면 승객들이 아우성을 쳐 난리가 나도 한참은 났을 그런 일인데 여기 인도에서는 그 누구도 불평 불만이 없다. 그저 웃으며 표정들이 천연스럽다.

 

            [ 여행객의 짐을 버스에 실을 때 아예 한 사람은 짐칸에 올라가 앉아 다른 사람이 주는 짐을 받고 있다..]
          

가이드가 와서 열차 내에서 파는 아침을 건넨다. 밥과 그리고 매번 그들이 먹는 누런 카레 같은 뭐 그런 것이다. 나는 이럴 때는 차라리 맨입으로 그냥 버틴다. 약을 먹기 위해 한 잔의 '짜이'로 끼를 때운다. 5시간 정도 연착이 될 것이란다. 그것도 도착해 봐야 아는 것이지 꼭 그렇다는 건 아니다.


집사람은 여행을 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있다. 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 입에 맞는 음식이 있으면 남몰래 슬그머니 비닐 봉지에 담아온다. 특히 과일이나 과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가지고 다니기도 편하다. 그러다가 오늘 같은 경우 내놓으면 다들 반긴다.


집사람이 이것저것 뒤져 내놓으니 제법 그럴듯한 간식 파티를 하게 되었다. 다른 칸에 있던 사람까지 와서 거들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이렇게 여럿 모여 나름의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을 사귀는 것이다. 마주 보는 곳에 자리한 인도 청년은 부러운 듯 우리들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그래서 일부러 그에게 우리가 먹고 있는 과자를 권하며 함께 하길 권했다. 그랬더니 수줍어하며 몇 번을 사양하더니 결국 함께 과자를 먹고 이런저런 현지 정보를 나누게 되었다. 대부분의 인도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었다. 그만큼 우리나라 여행객이 인도를 누비고 다니며 그들과 온갖 접촉을 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공산품이 인도로 수출되어 인기가 대단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더욱 우호적이었다.

 

               [어딜 가나 밋밋한 평원이 펼쳐진 인도의 데칸고원지대이다. 오직 도시에만 인구 밀집이 일어난 것은 무슨 까닭인가? ]

 

목적지 부사발에 도착했을 때는 예정보다 5시간이나 늦은 오후 6시였다. 우리는 또 버스를 타고 예의 그 지루한 인도의 마을들을 지나 아우랑가바드로 가야했다. 예정은 아잔타석굴을 보고 아우랑가바드로 이동하여 호텔에 투숙하기로 되어있었지만 기차가 연착을 하는 바람에 아무 일정도 소화할 수 없었다. 거기다가 더운 날씨에 버스도 목이 마른지 조수가 가끔씩 차를 세우면 밖으로 달려나가 물을 먹이곤 했다. 가다 서고 가다 서고 결국 깜깜한 밤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호텔에 도착 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비롯되었다. 내일은 엘로라석굴을 관람하고 바로 뭄바이로 가야하는 그 일정만 해도 빡빡한데 오늘 보지 못한 아잔타석굴을 보고 또 엘로라석굴까지 보고 뭄바이로 가야하게 된 것이다. 가이드 설명으로는 이 두 가지를 다 할 수 없으니 뭄바이에서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석굴을 둘 다 관람을 하든지 아니면 하나는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모두가 결정을 내렸다. 뭄바이의 일정을 모두 포기하고 이곳까지 와서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두 석굴은 보자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하긴 뭄바이는 교통의 중심인 만큼 살아가다가 우연히 비행기를 타고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 볼도 수 있을 것이란 이유가 컸다.


우리가 내린 결론은 많은 사람의 호의를 얻어 다수결로 통과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일 일정이 두 석굴을 보는 것으로 진행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의논 과정에서 젊은 두 처녀 총각이 반대를 했다. 인도에서 너무 지저분한 것만 봐왔으니 이젠 발달된 인도 문화를 뭄바이에서 보고 가자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런데서 두 사람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것이 다수결의 원칙이었다.


호텔에서 저녁을 먹고 각자의 방으로 갔을 때 가이드가 찾아와 함께 모임을 갖자고 했다. 한번도 이런 모임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 여행이 끝나가니 한잔 술을 나누자는 이야기로 들렸지만 너무 늦어서 처음에는 사양을 했다. 그런데 꼭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모임의 장소로 가보니 다들 모였는데 분위기가 싸늘했다.


의논 내용은 낮에 결정한 바로 그 일이었다. 벌써 결정을 했는데 또 이렇게 모두가 쉬어야 할 저녁 시간을 뺐는 걸 보면 그 두 젊은 사람의 불평이 대단했을 거란 짐작이 갔다. 총각보다 아가씨가 대단했다.
"이런 걸 다수결로 결정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한 사람이라도 불만이 있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아가씨가 하는 말은 자기도 여행경비를 내고 왔는데 왜 자기가 보고 싶은 것은 못 보는가 하는 불만이었다. 얼른 들으면 말은 맞다.


하지만 상황이 불가피하게 일정을 모두 소화하지 못하는 상황이고 이것 아니면 저것을 선택해야 하는 만큼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는 쪽으로 따라야하는 것이 순리다. 다른 어떤 좋은 대안이 없다. 석굴보다는 뭄바이에 가서 새로운 발전상을 보자는 것은 자기 한 사람의 주장이란 걸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저 자기의 욕심대로 왜 따라주지 않느냐는 앙탈에 불과하다. 아직도 그 아가씨의 표정과 말이 떠오른다. 흔히 하는 말로 당차다.


이럴 때 어지간하면 빠지는 것이 상수지만 하도 안타까워서 한 마디 했다. 우선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는 것, 뭄바이는 입장료가 없지만 석굴은 입장료가 있어서 여행사입장에서 관람을 하지 않으면 환불을 해야 나중에 말썽의 소지가 없다는 것, 등을 이야기하려고 몇 마디 하자 내가 말하는 도중에 그 아가씨는 자기의 입장을 얘기하려고 들었다.

 

그래서
"아가씨, 나는 당신이 이야기할 때 그렇게 남의 말허리를 자르지 않았으니 다른 사람의 말을 다 듣고 자기의 의견을 말하세요."
하고 나무랐다. 그랬더니 그 아가씨도 스스로 무안한지 예하며 말문을 닫고 수긍을 하였다.

 
그리고 이때 감정이 격해진 나를 발견하였다. 말을 하면서 가만 생각하니 이러다가 좋은 여행을 와서 괜히 감정이 나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서 내 의견을 말하지도 않고 그저 능구렁이처럼 슬쩍 빠져나오며 다른 사람들이 결정을 하면 무조건 따르겠으니 의논하라 하고는 내방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때가 새벽 한시가 넘어 있었다.

 

             [ 길거리나 사람이 붐비는 곳에는 이렇게 입담배를 파는 노점상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다양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

        
경험에 의하면 자신의 욕심이 눈앞에 있을 때는 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또 아무리 설득을 잘 한다고 해도 어차피 한쪽은 기분이 좋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 괜히 중재역할에 나섰다가 억지 화살을 맞을 필요는 없다. 아침이면 모든 것이 깨끗하게 해결 될 것이다.

 

살아봤지만 이 경우, 시간이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