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인도(India) - 모든 걸 드러내놓고 사는 나라 』---(12)

일흔너머 2011. 8. 7. 11:25

 

            [헤나 문신-진흙 같은 걸 짜서 이렇게 그림을 그렸습니다. 마르고 떼어내니 물감이 들여졌습니다. 봉숭아 물 들이듯.]

 

여행 10일차.(2011. 06. 08. 水)
호텔 로비로 내려가자 다들 모여서 인도 여인을 둘러싸고 떠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자 「헤나」문신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럴 때 나는 용감하다. 아니 과감하다. 걷어붙인 팔을 여인에게 내밀었다. 인도 여인은 아주 능숙하게 내 팔에다 쵸콜리트 같은 진득한 액체로 물고기를 그리더니 그 물고기 입 바로 앞에다 공기 방울 같은 물체를 그렸다.

 

나중에 뭄바이로 가다가 점심을 먹으러 찾아간 음식점 앞에 놓인 물고기 상을 보고 안 사실인데 이것은 공기방울이 아니라 작은 거북이였다. 행운을 가져다 주는 상이라 했다. 이 헤나 흔적은 한국에 와서도 거의 보름 가까이 남아있었다.


이제 여행의 막바지, 자이푸르를 떠나 델리로 간다.
그저 델리로 간다고 하니 이웃집 가듯 쉬운 줄 생각하지만 인도에서는 버스만 탔다하면 예닐곱 시간씩 달린다. 그것도 화장실도 참고 점심은 한 술 뜨는가 마는가 하면서 말이다. 거기다가 오늘은 또 더하다. 버스가 덜컹거리는가 싶더니 앞 타이어가 펑크가 났다.

 

인도에서는 버스에 우리나라 그 옛날처럼 조수가 타고 따라다닌다. 운전사와 승객은 칸막이로 나뉘어 있는데 승객들이 있는 곳에만 에어컨이 나온다. 조수는 운전사 바로 옆에서 창문을 열고 더위를 피한다.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중학생 정도의 앳된 얼굴을 하고 땀을 흘리며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따라 다니다가 오늘은 펑크난 타이어 교환하는 걸 거든다. 애처롭다. 내려다보다가 모른척하고 이내 눈을 돌려버렸다.

 

 

           [트럭의 앞에 삼각 혹은 역삼각의 붉은 표시를 한 것은 세 도시(위치를 그으면 삼각, 역삼각이 됨)를 다닐 수 있는 허가증이다.]


우리 아버지가 내게 거는 바램이 있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저렇게 운전사를 따라다니며 기술을 배워 운전을 하길 바랐다. 물론 그때는 운전사란 직업이 대단했고 또 정비 기술이란 것이 엄청 어려운 줄 알았다. 다 지난 이야기지만 저런 걸 보면 과거가 떠오르고 아버지가 생각나서 똑바로 쳐다보기가 민망했다.


다행히 델리를 얼마 앞두고 그래서 다른 타이어를 갈아 끼우기가 쉬웠다. 얼마 가지 않아서 델리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변속 기어가 문제였다. 결국 여행객들에게 여러 가지 선물(차, 향료 등)을 파는 가게 앞에다 차를 세우고 다른 버스를 불렀다. 잠시 짧은 시간에도 다들 많은 물건들을 샀다. 어지간한 생필품은 우리나라의 것이 세계적이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외제품을 선호한다. 특히 인도에서는 향료가 좋다며 평소 냄새도 싫어하던 사람들이 기꺼이 구입을 하는 것이다.

 

인도의 상공업과 정치 중심지인 델리는 뉴델리와 올드 델리로 나눈다. 옛날부터 마을이 형성되어 있던 델리와 영국 식민지 시대 때 새로운 행정수도로 건설된 델리 이렇게 둘인데 영국에 의해 건설된 신도시 부분을 뉴델리라고 부르고 옛날부터 있는 도시를 올드 델리라 부른다고 생각하면 된다.


 

              [왼쪽에 간디가 걸었던 발자국이 만들어져 있다. 실제 간디는 이 길을 산책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걸어갔다.]

 

먼저 간디 박물관을 찾았다. 박물관은 개관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빨리 가야한다고 거의 뛰다시피 찾아갔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숲과 정리정돈을 볼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델리는 어느 인도의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잘 가꿔져 있었다. 대통령궁도 여러 나라의 외교관저도 모두 있는 까닭에 훌륭하게 가꿀 수밖에 없었으리라.


간디 박물관은 정말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차근차근 둘러보고 싶었다. 젊은 날 나의 우상이었으니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우러나 고개가 숙여졌다. 최근 우리나라의 법정 스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유품으로 낡은 의자와 책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역시 큰스님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단 걸 느꼈지만 간디는 졸지에 맞은 죽음이었으나 남은 유품은 기껏 평소 신던 단추 하나 달린 나막신, 그리고 지팡이, 저격당한 시각에 멈춘 시계, 만년필 하나가 다였다. 

 

                 [ 간디가 사용하던 시계는 저격 당시의 다섯 시 십칠 분에 멈춰있다. 시계를 걸어 놓은 녹쓴 못이 인도 답다...! ]

  

 

미, 소 양진영으로 나뉘어 험악했던 냉전시대였지만 조그만 동양인 하나 죽은 마당에 세계 모두가 함께 슬퍼한 날이 바로 간디의 장례식이기도 했다. 흔히 이야기하는 무소유, 무저항을 몸소 실천한 위인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에는 항상「마하(위대한) 트마(혼)」라는 수식어가 따르는 것이다.


 

               [ 외국 사절을 만나기도 하고 산책을 하던 이곳이 바로 간디가 저격당한 곳이다...! ]

 

정말 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하지만 늦게 도착한 탓으로 폐관시간이 다가와 어쩔 수 없이 쫓겨나올 수밖에 없었다. 요즘 인도는 이슬람교도들의 테러 때문에 무엇이나 조심하고 어디나 경비가 삼엄하였다. 간디 같은 이런 위대한 인물이 그렇게 통일을 주장했지만 결국 인도는 파키스탄과 분리 독립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바로 종교의 문제였다. 어디나 갈등의 근원은 생각의 차이 즉 종교가 뿌리하고 있었다.


 

               [ 오른쪽으로 인디아 게이트가 보인다. 광장 주위는 노상방뇨 뿐 아니라 정말 어수선한 분위기에 더럽기 짝이 없다.]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를 관광하며 다다른 곳이 '인디아 게이트'였다.
세계 제1차 대전에 참가했던 7만 여의 군인들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시내 중앙 교차로에 세워져 있으며 언뜻 보면 파리의 개선문을 연상시킨다. 크기가 42m나 된단다. 벽면에는 군인들의 이름을 일일이 새겨놓았고 앞에는 꺼지지 않는 불을 지키는 제복을 입은 군인이 정자세로 서 있었다. 게이트의 광장에는 많은 시민들이 나와 더위를 식히고 둘러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밤이 되면 야경과 불꽃놀이를 즐긴다고 했다.

 


 

               [ 인도문에는 정복의 군인이 경게를 서고 바로 앞에 꺼지지 않는 불과 벽면에 전사자의 이름이 빼곡이 새겨져 있다.]

 

하지만 어디나 마찬가지로 정리되지 않고 지저분한 것은 규모가 주는 위엄이나 아름다움을 반감시켰다. 거기다가 광장 구석구석에 흩어진 사람과 동물의 배설물은 우리로 하여금 여기가 수도 한가운데란 걸 잊게 했다. 까닭은 간단했다. 사람은 많은데 화장실은 보이지 않았다. 이 훌륭한 도시에서 어떻게 화장실 하나 변변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억지로 찾아간 곳은 폐가처럼 보이는 지하의 화장실, 입구부터 흩어진 배설물로 감히 발을 들이밀지도 못할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정말 힘들었던 델리에서 부사발까지의 야간기차여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가 인도 여행이 어떠했는가를 물으면 야간기차여행을 해보라고 할 것이다.

그것도 완행으로.